독일 사람을 두고 ‘혼자 있을 때는 천재지만 둘이 모이면 조직을 만들고, 세 명 이상이 되면 전쟁을 일으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일으킨 원죄로 독일에는 ‘전쟁 기계’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따라다녔다. 2차 대전 말기 헨리 모겐소 미국 재무장관은 독일의 전쟁 수행 능력을 없애고자 독일 내 모든 공업시설을 파괴해 16세기식 농업국가로 되돌리자는 ‘모겐소 플랜’을 내놓기까지 했다. ‘군사력 강화’라는 단어가 현대 독일에서 ‘금기어 목록’ 1순위에 오른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 독일이 다시 총을 들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차기 총리인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 대표는 최근 군비 확대 등을 위해 10년간 총 5000억유로 규모의 특별기금을 조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부의 부채 한도 규정에서 국방비는 예외를 인정하도록 헌법도 바꾸겠다고 했다. 독일 재무장을 막던 걸림돌이 제거되는 셈이다.
독일만 부산한 것이 아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의회 연설에서 “병력 규모를 현재 15만 명에서 50만 명으로 증강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핀란드는 대인지뢰 금지협약 탈퇴를 검토하고 나섰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유럽 재무장’을 위해 총 8000억유로 규모 군비 증강을 공언했다. 프랑스는 서랍 속에서 잠자던 ‘프랑스 핵우산’을 유럽 동맹으로 확대하겠다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이 연상되는 긴박한 양상을 미국과 러시아가 앞장서 조성하는 모습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 과정에서 미국은 노골적으로 러시아 편을 들어 유럽의 오랜 ‘러시아 공포’를 되살렸다.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 돈을 내지 않으면 나는 그들(유럽)을 방어하지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성은 유럽에는 기존 세계질서가 막을 내렸음을 알리는 경종으로 다가왔다. 설상가상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에 맞섰던) 나폴레옹의 최후를 잊지 말라”는 말로 겁박의 수위를 높였다. “전쟁을 피할 길은 없고, 그저 적에게 유리하게 미룰 수 있을 뿐”이라는 마키아벨리의 경고가 그 어느 때보다 섬뜩하게 다가오는 시절이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