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법률가는 모두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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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2.28 17:37 수정2025.02.28 17:37 지면A23

[천자칼럼] "법률가는 모두 죽여라"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극 작품에는 날카로운 통찰이 가득하다. 그가 남긴 표현 중 널리 언급되는 것으로 <헨리 6세>에 등장하는 “법률가는 모두 죽여라(Let’s kill all the lawyers)”는 문구가 있다. 법률가들이 부와 특권을 독점하면서 관료주의를 심화하고 법치주의를 왜곡하는 데 앞장서는 행태를 극 중 무뢰한의 극단적 발언을 빌려 직격했다.

법률가를 향한 고까운 시선은 그 뿌리가 깊다. <성서>에서도 “화가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누가복음 11장 52절)라며 법조인을 향한 적개심을 드러낸다. 그 배경에는 “돈 때문에 하얀 것을 검다고 증명하는 기술자”(조너선 스위프트)라는 오랜 인식이 깔려 있다. 현대 사회로 오면서는 “모든 혁명기에 법률가는 잽싸게 반대파를 사형대로 길 안내를 했다”(영국 정치학자 해럴드 래스키)는 진단처럼 정치권력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던 법기술자들의 비굴함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산했다.

납득이 쉽지 않은 판결이 잇따르면서 사법부 신뢰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그제 헌법재판소는 직원 가족을 채용하기 위해 위법·편법을 자행한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감사원 직무감찰을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친인척을 채용하는 전통이 있다”는 선관위의 뻔뻔한 변명에 최고법원이 ‘면죄부’를 부여한 셈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을 보류한 것을 두곤 “국회 권한을 침해했다”고 결정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 의결 없이 권한쟁의를 청구한 것을 헌재가 법리대로 ‘각하’하지 않고, 국회에 ‘절차적 흠결’ 보완을 주문한 모습에서 ‘채점자가 수험생에게 답을 흘린 격’으로 보는 이가 적지 않다.

존경받는 길을 스스로 회피한 한국 사법부의 행보를 셰익스피어가 봤다면 뭐라고 읊었을까. “법을 잔인하게 사용하는 것은 독재자(none but tyrants use it cruelly)”라며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비겁함을 질타했을까. 아니면 “지옥은 비어 있고 악마는 모두 여기에 있구나(hell is empty and all the devils are here)”라며 판사와 죄인의 구분이 흐릿해진 현실을 개탄했을까.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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