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바이아웃 사모펀드(PEF) KKR이 화장품 용기·펌프 제조업체 삼화를 9000억원에 인수했다는 지난주 본지 보도가 나온 직후, 업계 안팎에서 삼화가 뭐 하는 회사냐는 문의가 쏟아졌다. 매각가에 ‘0’을 하나 더 쓴 것 아니냐고 걱정해주는 취재원도 있었다.
경기 의왕 공장 주변 주민 사이에서 ‘용기 만드는 집’으로 불리던 작은 회사를 두고 KKR뿐 아니라 블랙스톤과 칼라일까지 세계 3위권 PEF가 모두 뛰어들었다. 글로벌 화장품 회사의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1위를 차지할 만큼 삼화의 펌프 기술력이 압도적이라는 소문이 번지면서다. 글로벌 PEF에는 어떤 화장품 브랜드가 인기를 끌든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 화장품을 분출해주는 기술력을 갖춘 이 회사로 돈이 몰릴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삼화를 일찌감치 발굴해 사업 구조를 재편해낸 TPG는 1년 반 만에 세 배 수익을 누렸다.
'바이아웃' 펀드의 CB 중독
같은 시기 토종 바이아웃 PEF들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줄을 섰다. ‘한국판 로레알’로 업계 신성으로 떠오른 구다이글로벌의 전환사채(CB)에 투자하기 위해서다. 운용사 6곳이 투자자로 낙점됐다. 벤처캐피털(VC) 한 곳을 제외하면 국내 연기금과 공제회 콘테스트 자금을 싹쓸이한 최상위권 토종 바이아웃 PEF다. 이들이 적게는 1000억원에서 많게는 2800억원을 투입하기로 하면서 구다이글로벌은 단숨에 4조원 가치의 회사로 뛰어올랐다.
돈을 빌리는 회사가 ‘슈퍼갑’이었다. 구다이글로벌은 서린컴퍼니(6000억원)와 스킨푸드(1500억원) 인수 대금을 PEF에서 조달하기로 했다. 구다이글로벌은 몸값을 평가할 때 곧 인수할 두 회사의 이익을 미리 더해 반영해 달라고 요구했다. 지금 자산은 3억원에 불과하지만 7억원을 대출받아 10억원짜리 아파트를 매입할 계획이니 10억원 자산가 기준으로 대출해 달라는 셈이다. 은행이었다면 보안 직원이 조용히 출구를 안내했겠지만 구다이글로벌엔 토종 PEF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죽어가는 바이아웃 경쟁력
급성장하는 K뷰티에 베팅하는 글로벌 PEF와 토종 PEF의 접근이 대비된다. 이들이 바이아웃을 표방하는 하우스라는 점을 짚어봐야 한다. 기업의 경영권을 확보한 후 기업가치를 끌어올려 높은 가격에 되파는 전략을 구사하는 바이아웃 PEF는 전 세계 펀드비즈니스 중에서 가장 비싼 수수료를 받는다. 매년 펀드 규모의 1.5% 안팎을 관리보수로 받고, 연 수익률(IRR) 8% 이상의 이익을 거두면 초과 이익의 20% 수준을 성과보수로 받는다. 출자자(LP)들이 운용사(GP)의 기업 밸류업 능력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교직원공제회 사학연금 등 연기금·공제회도 토종 PEF 육성을 내걸고 10여 년간 펀드들에 수십조원의 출자금과 막대한 수수료를 지급했다. 수많은 운용사가 바이아웃을 표방하며 조단위 펀드까지 규모를 키웠다. 이렇게 커진 운용사들이 저평가된 알짜 기업을 발굴하기보다, 유행하는 기업의 소수 지분을 담기 위해 서로 손잡고 몰려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홈플러스 사태로 PEF가 도마에 오른 뒤 LP 사이에 ‘사고 칠 딜’은 하지 말라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요즘 뜬다는 K뷰티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사채인 CB의 안정성까지 갖췄으니 구다이글로벌 투자가 LP 입맛에도 딱이란 이야기다. PEF들도 고난도 바이아웃 딜보단 손쉬운 CB 딜을 내심 더 원한다.
진짜 걱정되는 건 토종 PEF의 바이아웃 경쟁력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토종 PEF의 대표 성공 사례로 하이브 프리IPO 투자와 금융지주 지분 투자가 거론된다. 한국 PEF업계에서 언제쯤 글로벌 투자자들이 주목하는 바이아웃 ‘대박’ 스토리가 나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