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초월하고픈 열망[이은화의 미술시간]〈358〉

3 weeks ago 6

앙상하게 마른 남자가 침대에 누워 있다. 방은 어질러져 있고, 남자는 병색이 역력하다. 침대 옆에선 정장 차림의 남자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그런데 머리가 해골이다. 그는 누구일까?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예술가의 죽음: 그의 마지막 친구’(1901년·사진)는 폴란드 화가 지그문트 안드리히에비치가 마흔에 그린 그의 대표작이다. 자화상인 이 그림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이젤에는 그가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이 놓여 있고, 바닥에는 팔레트와 물감, 붓들이 습작들과 함께 나뒹굴고 있다. 창작 활동이 끝났음을 암시한다. 테이블 위에 놓인 약병들을 통해선 그가 약물에 의존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바이올린 연주자는 죽음을 상징한다. 고독하게 생을 마감하는 젊은 예술가를 위해 구슬프고 아름다운 곡을 연주 중일 테다. 화가는 죽음을 생의 마지막 친구로 맞이하면서 세상과 이별하는 중이다.

죽음은 인류의 가장 오랜 관심사로 예술에서도 인기 있는 주제였다. 안드리히에비치가 이 그림을 남긴 건 당시 그가 처한 상황이 죽고 싶을 만큼 우울하고 절망적이었기 때문이다. 가난했지만 미술에 재능이 있던 그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장학금을 받아 프랑스 유학까지 갔고, 만국박람회 같은 국제전시회에 초대받을 정도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림이 팔리지 않아 여전히 생활고에 시달렸고 창작 활동에도 한계를 느꼈다. 마흔의 생활인이자 예술가로서 느낀 압박감과 고독감을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으로 표현한 것이다.

어쩌면 화가는 이 그림을 통해 스스로를 죽이고 다시 태어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죽음을 바이올린 연주자로 의인화한 것도 예술로서 죽음을 초월하고자 하는 열망을 표현한 것일 수 있다. 실제로도 화가는 이 그림을 그린 후 40여 년을 더 활동하다가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