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분히 의도가 보이는 ‘우클릭’ 행보로 세 확장에 나선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플랜’이란 걸 공개했다.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집권플랜본부’라는 별도 조직까지 꾸려 지난주 내놓은 보고서다. 제목은 ‘K-먹사니즘 미래 성장전략’. K를 붙이는 게 요즘 유행이라지만, K-먹사니즘이라니…. 제목부터 다소 코믹해 보였다.
46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들추면서 자못 놀란 대목도 있다. 맨 앞부분에 한국 경제의 장기 성장률 그래프를 내세운 것부터 생경했다. 과거 같으면 소득 5분위 배율이나 지니계수 같은 불평등 지표로 채워졌을 자리다. 현 경제 상황에 대해 “저성장, 무성장, 역성장이 고착화되고 있고 향후 5년이 골든타임”이라며 분배와 복지보다 ‘성장 우선(growth first)’을 외친 대목에선 이게 민주당 보고서가 맞나? 순간 헷갈렸다.
정책 패러다임을 재정정책보다 산업정책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도 백번 옳은 말이지만 과거 툭하면 돈 풀기를 우선시한 민주당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파괴적 혁신’을 통해 1%대로 추락한 성장률을 5년 내 3%대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도 영 어색해 보였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뒤로 갈수록 ‘삼성전자 6개 만들기’ ‘인공지능(AI) 주도 빅테크 산업 육성’ ‘K문화, 관광 서비스업 육성’ ‘균형발전을 통한 수도권 5개 만들기’ 등 그럴듯한 슬로건이 잔뜩 나열돼 있지만, 과거 정부가 시도한 걸 죄다 베껴놓은 것 같았다. 더구나 그 멋진 슬로건을 어떻게 달성할지에 대한 ‘How’는 어디에도 없었다. 급하게 우측 깜빡이부터 켠 까닭에 진지한 탐구와 고민이 부족한 흔적이 역력해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내린 결론은 ‘역시, 그러면 그렇지’였다.
사실 성장률 1%포인트를 끌어올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정책당국자들은 잘 안다. 성장률 하락은 노동 자본 투입 외에 기술 혁신, 제도, 노사 관계 등 총요소생산성을 구성하는 각 부문의 경쟁력이 구조적으로 추락한 데 따른 결과물이다.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원 상태로 되돌려놔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정부마다 구조 개혁을 그토록 주창하는 것이다. 3대 구조 개혁(노동·교육·연금)을 외치다 흐지부지해진 윤석열 정부도 시작은 창대했다.
모든 정부가 부르짖었으나 어느 정부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 규제 개혁은 사실 구조 개혁의 본질이다. 자본 투입 없이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규제가 덕지덕지해선 민주당이 집권플랜에서 제시한 혁신 성장도, 서비스업 육성도, 균형발전도 불가능하다.
규제 개혁이 매번 실패로 돌아간 근원은 기득권 허물기 실패에 있다. 규제를 풀었을 때 공공 이익이 침해당한다는 주장을 내세워 반대하지만, 실은 자신들이 공고하게 구축해놓은 울타리가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익집단이 기득권의 요체다. 각종 기득권 울타리에서 이익을 챙기는 시민단체와 노동단체가 그 중심에 있다.
글로벌 기업을 키우자고 해놓고, 예컨대 대기업의 투자 촉진을 위한 세금 감면을 꺼내기만 해도 특혜를 외치며 반발하는 노동계, 의료·관광 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육성하자면서도 의료 격차와 환경 파괴를 내세워 반대하는 시민단체가 버티고 있는 한 멋진 슬로건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결국 민주당의 집권플랜은 그들의 지지 기반을 설득하지 않고서는 실행이 불가능한 허상과도 같은 것이다.
집권플랜에서 내건 ‘삼성전자급 기업 6개 육성’ 슬로건은 코미디 중의 코미디다. 근래 삼성전자가 경쟁력을 잃어가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낡고 획일적인 노동 규제도 한몫하고 있다. 반도체산업 연구개발 인력에 한해 ‘주 52시간 근무 예외’를 인정하자는 ‘반도체 특별법’을 전향적으로 검토하다 노동계 반발이 커지자 부정적으로 돌아선 것은 뭔가. 세계 반도체 기업 간 혈투에서 국내만 낡은 노동 규제에 묶여 뒤처질 지경인데, 그걸 그대로 놔둔 채 삼성전자급 6개를 키우겠다니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결론적으로 민주당의 집권플랜은 성장 우선을 외쳤지만, 성장을 어떻게 이뤄낼지에 대한 해법은 빠진 맹탕 집권플랜이다. 이걸 갖고 이른바 중도보수까지 잡겠다는 심산이라면 중도보수층의 식견을 무시해도 너무 무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