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태 칼럼] '기후에너지부'가 걱정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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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태 칼럼] '기후에너지부'가 걱정되는 이유

이재명 정부 첫 내각 인선이 대략 마무리됐다. 디테일한 정책이 필요한 자리에 기업인, 관료 등 전문가를 기용한 점이 돋보이고, 교수 발탁을 최소화한 것도 점수를 줄 만하다. 정무적 성격이 짙은 자리에 정치인을 앉힌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긴 하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훌륭한 전문가를 뽑았으면 제대로 일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인선은 그럴듯하게 해놓고 막상 장관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율 중인 정부 조직개편 방향을 보면 몇몇 부처는 벌써 우려되는 구석이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그렇다. 장관에 내정된 김정관 후보자는 관(官) 출신이지만 산업 현장 경험이 풍부하고, 매크로 정책 경험도 많다. 그는 기획재정부 시절, 실력과 인품을 두루 갖춰 선후배들의 신망이 두터웠고 최소한 차관까지 올라갈 인물이라는 평이 많았다. 하지만 초임 국장 때 국가 경제를 위해 민간에서 더 기여하고 싶다며 스스로 관을 떠나 기업으로 이직했다. 두산에서는 원전 세일즈 첨병으로 여러 수출 협상을 주도했고, 에너지 전문가로서 실력을 닦았다.

그의 산업부 장관 발탁을 두고 최적의 전문가를 뽑았다는 평이 뒤따른 이유다. 하지만 그가 국회 인사청문을 통과해 장관으로 취임할 때쯤이면 에너지 부문이 산업부에서 빠질 공산이 크다. 국정기획위가 짜고 있는 개편안에 따르면 어떤 식으로든 에너지는 산업부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 확실하다. 환경부에 붙든지, 아니면 신설 기후에너지부로 이관되든지 둘 중 하나의 선택지만 남아 있다. 에너지 전문가로 장관에 발탁했는데 에너지가 사라지는 일이 벌어지는 셈이다.

국정기획위가 에너지를 떼내려는 이유는 산업적 측면 못지않게 환경적 가치를 중시하겠다는 발상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계해야 할 지점이 있다. 섣불리 한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우는 순간, 다른 한쪽은 생각지 못한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과거 문재인 정부 때 탄소배출권 정책을 환경부로 이관한 게 그런 사례다. 배출권 관리를 환경 우선으로 하겠다는 명분이었지만, 이후 배출권 거래 시장이 왜곡되면서 기업 부담만 키운 결과를 낳았다. 수자원 관리를 국토교통부에서 빼내 환경부로 옮긴 것도 패착이었다. 수자원 관리 노하우는 훌륭한 수출 테마인데도, 환경 보호 차원에서 규제 잣대를 들이대니 수출은커녕 국내 물관리 산업도 제대로 키우지 못한 결과를 냈다.

에너지와 환경, 서로 상충돼 보이는 것을 따로 두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값싸고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를 통한 산업 발전과 환경 보호라는 두 가치 모두 중요한 만큼, 어느 한쪽에 무게중심이 쏠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더구나 에너지는 정책적 측면에서 보면 지원해야 할 대상이다. 국가 간 에너지 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반면 환경적 가치로 접근하면 규제 대상이다. 하나의 부처가 지원과 규제를 동시에 가져간다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것이다.

에너지는 산업 전반의 근간을 이루면서 전후방 효과가 큰 산업이라 에너지 없는 산업정책이란 생각할 수 없다. 지금 산업부의 절반도 에너지 관련 조직이다. 김 후보도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명 후 첫 간담회에서 “AI(인공지능) 시대 반도체가 두뇌라면, 에너지는 심장에 해당된다”며 에너지 정책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비쳤다. 지금 산업부에서 에너지를 뺀다면 통상 말고 산업 정책은 하지 말란 거나 마찬가지다.

이참에 큰 그림으로 접근해 경제 부처의 역할을 재조정할 필요도 있다. 과거 국가 주도 성장을 이룰 때는 거시정책이 중요했고, 그걸 기재부가 맡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의 거시정책이란 게 큰 의미가 없다. 매년 성장률과 고용 목표치를 제시하지만 숫자일 뿐 이를 달성할 정책적 수단이 정부엔 사실상 없다. AI만 봐도 그렇다. 정부 역할과 무관하게 시장 경쟁 과정에서 출현한 AI가 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국가의 성장률과 고용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업이 앞서가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면 정부는 뒤에서 묵묵히 지원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산업 지원 성격이 강한 산업부를 경제산업부로 확대 개편해 경제 정책 맏형 부처로 두는 것도 적극 고려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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