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어리 맛에 대한 인식[김창일의 갯마을 탐구]〈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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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얼마 전 모로코와 포르투갈, 스페인을 다녀왔다. 지중해, 대서양과 접해 있어 정어리를 즐겨 먹는 나라다. 아프리카 수산 강국인 모로코는 정어리 어획량이 세계 최고다. 스페인은 소금과 올리브 오일로 간을 맞춘 후 그릴에 구워내는 정어리 구이와 정어리 샌드위치 등 다양한 정어리 요리를 즐긴다. ‘땅에는 올리브, 바다에는 정어리’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르투갈은 정어리 요리 및 각종 가공식품뿐 아니라 기념품, 생필품, 건물 벽면 등을 온통 정어리 디자인으로 도배해 놓은 명실상부 정어리 나라다. 이들 국가의 정어리 식문화와 활용을 보며 우리는 왜 정어리를 좋아하지 않는지 의문을 품고 돌아왔다.

정어리를 즐기지 않는 원인을 찾기 위해 책을 뒤졌다. 김려가 유배지인 진해에서 저술한 ‘우해이어보’(1803년)에 정어리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맛은 좋지만 약간 맵고 떫다. 잡으면 바로 구워 먹어도 좋고, 혹은 국을 끓여도 먹을 만하다. 잡은 지 며칠이 지나면 살이 더욱 매워, 사람들에게 두통을 일으키게 한다. (중략) 이곳 사람들은 정어리를 많이 먹지 않고 잡아서 인근의 함안, 영산, 칠원 등 어족이 귀한 지방에 가서 판다.” 조선시대에도 인기 있는 물고기가 아니었음을 추측할 수 있는 구절이다.

기사를 검색했더니 주목할 만한 내용이 있었다. “요사이 성진 부근의 바다에는 난데없는 고기떼가 밀려와서 손으로라도 마음대로 건질 만한 형편이므로 성진 시민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해안에 나가 그것을 주워 들이는 형편인데 그 고기는 속된 말로 소청어이며 벌써 칠팔 일 동안 모든 시민이 일제히 잡아들인 까닭으로 지금 성진 해안은 마치 정어리 천지가 된 모양이다.”(동아일보, 1923년 10월 31일) 당시 정어리 떼 위에 판자를 놓고 사람이 올라서도 내려앉지 않을 정도였으며 기선 항해가 어려울 만큼 대단한 어군이었다고 한다. 1930년대 후반에는 정어리와 멸치가 총 어획량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한반도 바다는 정어리로 가득했다. 어민들은 정어리를 식용으로 이용하는 대신에 압착해서 기름을 뽑았고 찌꺼기는 퇴비로 수출했다.

일본만 하더라도 정어리 음식 전문점이 성행할 정도로 정어리는 대중적인 식재료다. 일본은 정어리뿐만 아니라 전갱이, 꽁치, 가다랑어, 참치, 방어, 청어, 고등어 등 전통적으로 붉은살생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한국인은 명태, 대구, 조기, 가자미, 넙치, 민어, 농어 등 흰살생선을 즐겨 먹었다. 맛은 혀와 냄새 등으로 느끼는 감각이지만 음식에 대한 추억, 유전자는 물론이고 문화권에 따라서 선호하는 맛이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가 정어리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비슷한 형태이면서 유사한 맛을 내는 전갱이, 청어, 전어, 꽁치, 고등어 등은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산에서 건어물상을 운영하는 한 사업가는 정어리포를 개발했으나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우리는 여전히 양어 사료, 통발 미끼 위주로 활용하고 있다. 강제윤 섬연구소장이 통영 동호항 위판장에 산처럼 쌓인 정어리를 구경시켜주며 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기름진 정어리는 굽거나 조리면 꽁치나 고등어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맛있는데 파는 곳이 없습니다.” 정어리 맛에 대한 인식 전환은 풀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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