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우방 경계 무너뜨린 우크라 종전협상의 역설[기고/남주홍]

1 week ago 4

남주홍 전 국가정보원 1차장·한국자유총연맹 고문

남주홍 전 국가정보원 1차장·한국자유총연맹 고문
우크라이나전 종전을 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밀착협상(personal diplomacy)에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국들의 대미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 미국-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의 극단적 파국에서 보듯, 미국이 피해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를 패싱하고 가해자인 푸틴 대통령과 직거래를 추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이 러시아의 군사혈맹으로 참전해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러시아의 첨단 군사기술을 습득해 위협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우리에게도 초미의 관심사다.

이 전쟁은 푸틴 대통령이 구소련의 부활을 꿈꾸며 일으킨 명백한 침략전쟁이다. 3년째 전쟁이 지속되면서 우크라이나 영토의 20%가 점령되고 양측 민간인과 군인 등 인명 피해가 120여만 명에 이르는 등 사생결단식 지구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군사적 지원이 수천억 달러에 이르면서 일종의 대리전 성격까지 띠고 있다.

따라서 종전협상이 성사되려면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에 대해 미국의 분명한 안보 공약이 있어야 한다. 미국이 광물협정을 전제로 지원하겠다거나 유럽이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겠다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만약 미국이 조기 종전에 집착해 러시아의 점령지를 공인한다면 무력 침략을 금지하는 유엔 안보헌장을 정면으로 부정할 뿐만 아니라 중국 팽창주의에도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 그럴 경우 우크라이나전은 중동 휴전처럼 단지 ‘전쟁 같은 평화(war-like peace)’에 그치고 만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한국전 모델’ 적용에는 한계가 있다. 한국전은 미국 주도의 유엔 집단안보력이 참전해 나름의 원상회복을 시킨 상태에서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구국외교로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어렵게 휴전 체제가 성립된 특수한 경우다. 이는 1973년 베트남전의 파리평화협정과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당시 협상 주역인 헨리 키신저가 “파리평화협정은 사실상 베트남을 월맹에 팔아넘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고백했듯, 미국은 애초 전면 철수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 2020년 탈레반 반군과의 평화협약으로 일단 미군이 철수하게 되자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탈레반 무력 공세에 무너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강자의 냉엄한 국익 우선주의 전략에서는 전통적인 적과 우방의 경계가 무의미하고 필요시 가치동맹을 벗어나 적과의 동침도 가능한 것이다.

한미 양국이 북한 비핵화 원칙을 재천명하고 ‘한국 패싱’은 없다고 한 것은 다행이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푸틴식 접근 가능성과 대화 러브콜은 경계해야 한다. 북한의 핵 보유는 이미 기정사실인데 한국의 독자 핵무장 여부는 오직 미국과 핵협의그룹(NCG)하의 희망고문에만 머물러 있고, 북한은 우리를 핵 인질 삼아 중-러 후광으로 미국과의 빅딜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은 탄핵 사태를 대남 공작 공세의 최적기로 보고 종북세력을 통해 체제 타파 총력 선동전을 펼치고 있으나 문재인 정부는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을 박탈해 현재 대공 전선은 거의 와해된 상황이다. 급기야 최근 미국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서는 한국이 탄핵 내전으로 심각한 정체성 급변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6·25전쟁 이래 최대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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