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하다’는 ‘싸다’의 고급 표현이 아니다[권대영의 K푸드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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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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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책임 있는 방송인이나 기자, 작가들이 방송에서 이야기할 때 꼭 갖춰야 할 기본 마음가짐이 있다. 말은 그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순수 우리말이 있는데, 굳이 한자를 쓸 경우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농산물이나 음식의 가격을 이야기할 때 쓰는 ‘저렴(低廉)하다’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값이 싸다’는 순수한 우리말이 있는데도 어느 방송인이 저렴하다는 말을 쓰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많은 기자나 리포터가 저렴하다는 표현을 스스럼없이 쓰고 있다. 심지어 방송에서 작가들은 어느 누가 ‘값이 싸다’라고 말하면 굳이 ‘저렴하다’는 자막으로 고쳐 내보내기까지 한다. 우리말이 중국 한자어에 모욕과 수치를 당하는 느낌이다.

굳이 좋은 우리말이 있는데 말도 안 되는 한자말을, 그것도 배운 사람의 언어처럼 통용되는 것을 보면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거북하고 창피하다. 우리나라는 한 번도 중국의 일원이 된 적도 없고 우리말을 잃어버린 적도 없다. 일본이 우리말을 없애려고 했어도 우리는 지켜냈다. 방송에서 ‘개’라고 하면 될 것을 ‘견(犬)’이라 하고, ‘고양이’를 ‘묘(猫)’라 하고, ‘뱃머리’라는 좋은 말이 있는데도 굳이 ‘선수(船首)’라고 너무 쉽게 말한다. 이렇게 한자어를 쓰는 것은 자신들이 배운 사람임을 은근히 과시하려는 마음이 깔려 있다고 본다. 과거 우리말을 쓰면 못 배우거나 촌놈 취급을 당하고, 어려운 한자어를 써야 배운 사람 행세를 할 수 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조선시대나 1900년대에 통할 일이다. 한심하게도 이런 풍토가 이른바 ‘배웠다고 하는’ 기자나 작가가 많이 근무하는 방송에서 특히 심하다.

저렴이란 말은 농산물이나 음식 가격을 말할 때 너무 많이 쓰인다. 예전에는 어렵고 배우기 힘든 한자어를 써야 어디 가서 행세깨나 할 수 있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잘못된 한자어를 함부로 쓰는 것이 오히려 못 배운 사람 티를 내는 것이다.

‘저렴’에서 쓰는 한자 ‘염(廉)’은 깨끗하면서도 조촐하나 품격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즉, ‘염’은 원래 가격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격(格·class)’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런데 격과 전혀 다른 가격을 말하는 줄로 잘못 알고 있다. ‘염’을 굳이 한자로 말하자면 ‘품격’이나 ‘격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화려하지 않지만 깨끗하고 부끄러움도 아는 마음을 염치(廉恥)라고 한다. 이렇게 좋은 말이기 때문에 ‘염치가 없다’는 말은 나쁜 말이다. 같은 이유로 ‘격이 낮다’는 말을 하고자 할 때 ‘저렴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말을 ‘가격이 싸다’는 의미를 담아 함부로 ‘저렴하다’고 해버리면 오히려 ‘가격에 비해 형편없다’는 말이 되어 버린다. 굳이 우리말에 해당하는 말을 찾으면 ‘싸구려’가 이에 해당된다. 굳이 ‘값이 싸다’를 한자어로 말하고 싶다면 ‘저가(低價)’로 말하든지, 착하고 좋은 가격이란 뜻으로 말하려면 ‘염가(廉價)’라고 말하면 되는 일이다.

오늘날은 남이 쉽게 하는 한자어를 따라 한다고 배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잃어버린 우리말을 찾고 말의 뿌리를 찾아 말하는 것이 진정한 배운 사람의 몫이다. 어설픈 한자 뜻풀이로 말하는 것은 쉽지만 본래 우리말의 진실을 찾아 쓰는 것은 훨씬 어렵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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