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취업할 때 고려 1순위는 내 건강과 안전[정경아의 퇴직생활백서]

5 days ago 4

일러스트레이션 갈승은 atg101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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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퇴직 후에도 걱정은 끝나지 않는다. 돈과 건강, 자식 등 걱정하는 분야만 다를 뿐 많은 퇴직자들이 여전히 인생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진 채 살아간다. 그중에서도 김 부장님의 고민은 단연 인상적이었다.

나는 요양병원에서 김 부장님을 알게 됐다. 그는 내 어머니와 같은 병실에 계신 어르신 한 분의 보호자였다. 처음에는 싸 온 간식을 조금씩 나누는 정도였다가 어느덧 긴 얘기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퇴직자라는 공통점이 마음의 거리를 좁힌 듯했다. 한참 만에 털어놓는 그의 속사정은 이러했다.

김 부장님은 오랜 기간 몸담았던 회사에서 3년 전 희망퇴직을 했다.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터라 신입사원 시절부터 회사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 왔다. 퇴직도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는 퇴직 후 곧바로 작은 공장의 관리부장 자리를 얻어 새 삶을 꿈꿀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김 부장님은 ‘떠올리기조차 싫은 기억’이라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악몽은 너무도 순식간이었다고 했다. 그는 기계가 멈췄다는 보고를 듣고 간 작업장에서 손쓸 틈도 없이 변을 당했다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기계를 가까이서 살펴보던 중 갑자기 기계가 움직이는 바람에 신체 일부를 잃게 됐다는 것. 출근한 지 꼭 한 달 만이었다. 김 부장님은 이후 겪었던 고통에 대해서 말을 아꼈다. 천신만고 끝에 가까스로 심각한 통증으로부터 벗어났다며 씁쓸해할 뿐이었다. “현재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머니를 뵙는 것이 유일하다”는 말 속에서 그의 깊은 시름이 느껴졌다. 그의 일상이 전과 다르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언젠가 퇴직자의 상당수가 재취업을 희망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실상은 퇴직자들의 바람을 담아내기에 역부족이다. 퇴직자들을 받아주는 곳은 사무직보다는 단순 노동직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 숱한 문제와 어려움이 발생한다. 만약 지금 재취업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다음의 세 가지를 반드시 점검해 보시길 바란다.

첫째, 새 직장의 환경을 파악하자. 김 부장님처럼 낯선 현장직으로 옮기는 경우는 더 유의해야 한다. 현장은 돌발 변수가 많고 안전사고의 위험도 높다. 숙련도가 낮은데 이런 곳에서 일할 경우 잘못하다간 큰 화를 부르게 된다. 따라서 업무 강도는 어느 정도인지, 안전 관리는 잘 되고 있는지 등을 미리 살펴보는 게 필요하다. 내가 알고 조심하는 태도만큼 확실한 안전장치는 없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았다면 다른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현명하다.

둘째, 자신의 건강 상황을 체크하자. 퇴직 후 재취업을 고려할 때 놓치면 안 되는 요소가 본인의 신체적인 상태다. 육체노동을 해야 한다면 보다 철저한 확인이 필요하다. 절대 건강을 과신해 무리해서는 안 된다. 퇴직 후에는 나이가 들어 몸도 예전 같지 않고 다쳤을 때의 회복력도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내 컨디션이 향후 하게 될 업무를 감당할 수 있는지도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준비가 안 됐다면 건강한 식습관과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을 키우는 노력이 급선무다. 건강을 담보로 한 성공은 있을 수 없다. 셋째, 가족과 충분히 상의하자. 퇴직한 가장의 행보는 가족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퇴직자 입장에서도 현직 때보다 사회적 관계망이 줄어든 만큼 가족의 비중은 더욱 커진다. 김 부장님처럼 재취업 후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므로 취업 전에 자신이 왜 재취업을 하려 하는지, 가족들이 이에 대해 우려를 하지는 않는지 등에 관해 세세히 의논해야 한다. 퇴직자는 조급함에 사로잡혀 자칫 생각이 매몰되기 쉽다. 이때 가족들은 좋은 조언자가 될 수 있다. 가족이 만류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주변 퇴직자들한테 물어보면 재취업을 원하는 마음 한편에는 대부분 경제적인 걱정이 자리하고 있다. 누군가는 ‘소득 크레바스’(법정 정년과 연금 수령 연령 사이의 소득 공백) 시기를 버티기 위해서라 했고, 어떤 이는 당장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답했다. 안정적인 수입에 대한 절박함이 큰 것이다. 그렇지만 재취업을 단순히 금전적 측면으로만 접근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아무리 돈이 절실하다 해도 돈과 바꾸면 안 되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바로 ‘건강과 안전’이다.

퇴직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해야 한다면 ‘얼마나 많이, 그리고 오래 벌지’에 집중하기에 앞서 ‘얼마나 건강하고 안전하게’ 근무할 수 있을지를 신중히 판단하자. 우리는 이제 겨우 인생의 절반을 산 사람들이지 않은가. 우리의 몸은 잠시 쓰다 버릴 일회용이 아니다. 오늘 나를 돌보지 않으면 내일의 나도 없다. 퇴직자의 제1의 자산은 현금이나 부동산이 아니라 ‘건강한 나 자신’임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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