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대에 걸친 유구한 세월이라면 사실 지도상에 있던 한 국가가 멸망하기도 하고 잘나가던 대기업이 공중분해 되기도 할 만한 시간 아닌가. 그만큼 이화담은 모든 걸 부식시키는 그 세월의 야수성에 지혜롭게 맞서온 셈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맛과 정성에 더해 고객을 섬기는 진심과 익숙한 것과 부단히 결별하려는 자기 갱신의 용기가 포개졌기에 가능했을 테다.
이 집의 메뉴는 시대별로 계속 진화해 왔는데, 현재 대표 메뉴는 신선한 돼지갈비를 주재료로 삼는 생갈비만두전골과 생갈비만두매운탕 등이다. 전골과 매운탕은 채소와 양지를 함께 우려낸 육수를 베이스로 삼는다. 굽거나 쪄 먹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갈비를 국물을 머금으며 씹는 맛이 가히 일품이다. 풍부한 건더기를 먹다 보면 칼국수가 서비스로 나온다. 김치 같은 찬은 손님이 원하는 만큼 직접 가져다 먹을 수 있게 했다. 이 집엔 갈비젓갈조림이라는 독창적인 메뉴와 함께 아이들을 위한 함박 정식과 쫄면, 어른들을 위한 칼국수와 냉면 단품도 판다. 여기서 이 집의 넉넉하고 유연한 풍모를 읽는다.
이화담의 홀은 매우 넓은 데다 테이블도 널찍한 간격으로 배치해 식객들이 여유롭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청결함이었는데, 바닥에서 반짝반짝 빛이 날 정도로 청소가 잘돼 있었다. 평일 조금 이른 점심 시간대였는데도 손님들이 적잖게 밀려오는 이유를 능히 알 수 있었다. 정원까지 1000평에 달하는 이화담은 그 자체로 명물이고 문화적 소구력을 갖고 있는 정읍의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내장산이라는 명산을 품고 있고 백제의 옛 가요 ‘정읍사’의 도시일 정도로 유서 깊은 정읍도 다른 지방 도시처럼 인구가 줄고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1966년 28만 명에 육박했던 인구가 이후엔 계속 줄어들어 올해 1월 기준 10만 명을 겨우 넘겼다. 우연히 잡아탄 택시의 기사님도 정읍의 퇴락을 매우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정들었던 친구와 이웃이 하나둘씩 고향을 등지고 떠날 때, 나고 자란 곳을 지키는 정주민들은 무엇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위로를 주는 곳 또한 노포라고 생각한다. 고향을 지키면서 세파에 아랑곳하지 않고 단단한 자부심으로 장사를 하고 있는, 100년이 넘도록 한결같이 문을 여는 노포라면 주민들의 허한 마음을 충분히 달래주지 않을까. 이화담은 정읍 사람들에게 자부심인 동시에 정읍을 떠난 이들에겐 노스탤지어의 표상 같은 곳이 아닐까 싶다. 길 떠나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그의 안녕을 노래한 ‘정읍사’ 속 여인처럼 이화담은 연중 하루도 쉬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며 정읍을 떠난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언제든, 어디서든 돌아오시라고.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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