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워치] 통계 수난시대…경제정책은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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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데이터 디펜던트'(Data dependent).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나 한국은행 등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에게 향후 금리의 방향을 물으면 천편일률적으로 내놓는 답이다. 중앙은행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이 말을 우리말로 바꾸면 '경제지표 의존'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금리 조정의 방향을 예측하지 않고 정치적 고려 등 여타 요인을 일절 배제한 채 오직 경제지표의 최신 수치만을 근거로 삼아 그 시점에서 최선의 결론을 도출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이미지 확대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 [로이터=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 [로이터=연합뉴스]

정기적으로 생산, 발표되는 경제지표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숫자가 경제 정책 결정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지표가 담긴 통계는 정확하고 공정하며 신속해야 한다. 이처럼 경제정책의 기반이 되는 통계는 대부분 숫자로 이뤄졌으므로 애매모호하거나 불분명한 부분이 없고 해석의 여지도 남지 않는다. 따라서 산출 과정의 중대 오류만 없다면 대개의 경우 숫자는 정확한 것으로 간주하고 그 숫자가 의미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대개의 경우 이견이 많지 않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통계도 계산 방식과 산출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값을 만들어낼 수 있고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특정 시점의 수치를 전기와 비교하는지, 아니면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는지에 따라 증감률이 달라지며, 일정한 기존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면 기저효과 등에 속을 수도 있다. 흔히 경제성장률로 인식되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속보치, 잠정치, 확정치로 나눠 시간이 가면서 계속 수치가 보정되고, 전 분기 대비인지, 연율 환산인지에 따라서도 숫자가 달라진다. 여기에 계절적 요인이나 명목·실질의 개념까지 신경 쓰다 보면 뭐가 뭔지 헷갈리고 골치가 아파지기 시작한다.

미국의 최신 고용 통계 수치가 논란에 휩싸였다. 미국 노동부 노동통계국(BLS)은 지난 1일 미국의 7월 일자리(비농업) 증가 규모가 7만3천명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전문가들의 사전 예상치 10만개에 크게 못 미치는 부진한 수치. 더구나 앞서 발표한 5월의 일자리 증가 규모는 기존 발표했던 14만4천개에서 1만9천개로, 6월분은 14만7천개에서 1만4천개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이 일자리 통계는 미국 내 12만1천곳에 달하는 기업과 정부 기관의 응답을 토대로 집계하는데 뒤늦게 입수된 응답을 포함하고 계절조정 요인을 반영해 보정한 결과 수치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이미지 확대 미국 구인 표지판. [EPA=연합뉴스]

미국 구인 표지판. [EPA=연합뉴스]

고용 상황이 나빠졌다는 통계를 내놓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민주당에 유리하게 수치를 조작했다고 발끈해 에리카 맥엔타퍼 노동통계국장을 전격 해임했다. 그동안 "미국 경제가 탄탄하다"고 강변해왔던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관세 정책으로 미국 경기가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는 통계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통계 보정으로 줄어든 일자리 규모 25만8천개가 이례적으로 컸기 때문에 신뢰 훼손을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지만, 대통령이 고용 통계 수치에 즉각 정치적으로 반응하며 통계책임자를 경질한 것 또한 정부 통계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추락시킨 주범이라는 평가다.

이미지 확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신화=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신화=연합뉴스]

경제 상황을 반영해 알려주는 통계와 그 숫자는 정치나 당파성 등의 이해관계에 영향받지 않고 정확하고 공정하게 사실만을 보여줘야 한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물론 정부의 각종 주요 경제정책이 그 통계수치를 토대로 생성되고 결정되기 때문이다. 오류나 의도적 조정이 가미된 수치를 기반으로 잘못된 정책이 탄생했을 때 국가 경제에 미칠 악영향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최근 국내에서도 주택가격 등의 통계를 놓고 정치권이 압력을 행사했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결국 어떤 게 진실인지는 법정에서 판가름 날 수밖에 없지만 통계가 정치적 공방에 휘말리는 순간 신뢰는 땅에 떨어질 것이며 정확한 통계에 기반한 정책은 요원한 얘기가 된다. 결국 통계를 생산하는 기관과 직원들이 담장 위를 걷는 심정으로 공정성·투명성을 높이고자 밤낮으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통계가 정치 공방에서 해방되는 길이다. 통계는 죄가 없다.

hoonkim@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8월04일 14시41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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