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조작설-反中정서 엮은 ‘거대 음모론’
계엄령-농성전 실패 뒤 여론-심리전 돌입
법정선 미몽 속 궤변 ‘구차한 망상가’ 모습
고개 들어 호수 위 아닌 밤하늘 달을 봐야
윤 대통령은 그 글에서 “외부 주권침탈세력의 적대적 영향력 공작을 늘 경계해야 한다”며 ‘적대적인 영향력 공세를 하는 국가’로 사실상 중국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투개표 부정과 여론조사 조작은 국내 반국가세력과 국외 주권침탈세력의 합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이른바 ‘회색지대 전술’ ‘하이브리드 전쟁’ 개념을 동원해 “군사도발과 전쟁을 하지 않고 공격 주체가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 회색지대 하이브리드전을 주권침탈의 수단으로 사용한다”며 부정선거 의혹에다 반(反)중국 정서를 얹어 거대 야당과 중국공산당 간 커넥션을 들고 나온 것이다.
하이브리드 전쟁은 흔히 정규군의 재래전뿐 아니라 심리전 정보전 사이버전 같은 비군사적 수단을 동원한 21세기 복합 전쟁 양상을 설명하는 단어다. 하지만 잡종·혼종이란 뜻에서 보듯 전쟁의 온갖 양상을 포괄하는 개념일 뿐 실상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편의적 유행어라는 평가가 많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전쟁과 평화 간 경계를 흐트려 국가 간 일상적 경쟁과 갈등을 군사적 충돌이라는 진짜 전쟁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위험한 용어라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의 ‘국제적 검은 결탁’ 주장은 당장 지지층을 자극했다. 극성 지지 매체와 유튜브에선 ‘주권침탈세력’이란 말이 나오기 무섭게 중국의 선거 개입과 여론 조작을 주장하는 허위정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출처와 유포 과정조차 황당한 ‘선거연수원 중국 간첩 99명 체포설’을 시작으로 한 가짜뉴스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런 허위정보는 고스란히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윤 대통령 측의 변론으로 이어지면서 확대 재생산됐다.그건 단지 여론전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윤 대통령에게 다급한 것은 외부의 적과 싸워야 할 군대를 국내 정적을 향해 이용한 데 대한 방어 논리였다. ‘야당의 패악질’이 과연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였느냐는, 나아가 닭 잡는 데 왜 소 잡는 칼을 썼느냐는, 보수적 동정론자마저 받아들이기 힘든 명분과 수단의 심각한 불균형을 해소해야 했다.
그렇게 군색한 처지에서 ‘전쟁 아닌 전쟁’이란 모호하고 불순한 개념은 어디든 끼워 넣을 수 있는 맞춤형 열쇠였다. 전시·사변이 국토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하드웨어의 위기라면, 야당의 폭주에 외부의 적대 공작까지 더해진 최근 상황은 국가 운영시스템, 즉 소프트웨어의 위기라고 윤 대통령은 주장했다. 전시·사변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소프트 비상사태’인 만큼 두 시간짜리 무력시위로 ‘소프트 비상계엄’을 했다는 논리를 구성한 셈이다.
윤 대통령은 선거조작설에 중국의 개입까지 엮은 ‘거대한 위협’이란 허구를 만들어 계엄의 명분을 삼았고, 그 과정의 불법 행위에 대해선 자신의 개입을 부인하며 아랫사람의 과잉충성 또는 오해 탓으로 돌렸다. 그러다 보니 의도했던 ‘비장한 반공투사’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망상과 궤변을 늘어놓는 ‘초라한 안티 히어로’로 귀착될 수밖에 없었다.비상계엄을 통한 ‘반국가세력과의 전쟁’, 이어진 관저 농성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 무참한 패배에 대한 반동으로 야당 지지율을 함께 끌어내리는 ‘물귀신 작전’ 효과를 내긴 했다. 이후 윤 대통령은 법정 변론을 현장 지휘하면서 본격적인 이념·사상전에 뛰어들었고 미국 내 우호 인사를 동원한 국제 여론전, 사법부를 흔드는 장외 심리전까지 벌이고 있다.사실 그 무모한 전쟁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됐다. 여소야대의 소수파 정권인데도 야당과의 타협을 거부하다 도저히 벗어나기 어려운 궁지에 몰리자 마지막 수단인 비상조치의 유혹에 빠진 것이다. 결국 그 유혹에 굴복한 대가를 치러야 할 지금에 와서 다시 정치와 안보 사이, 전쟁과 평화 사이, 나아가 진실과 거짓 사이의 경계마저 흐리는 위험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제 그 전쟁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대국민 여론전은 탄핵 여론을 뒤집기엔 역부족이고 극단 세력의 사법부 겁박은 중도층의 이반을 불렀다. 직접 나선 법률전 역시 음모론적 망상과 구차한 회피라는 모순의 늪에 빠진 형국이다. 윤 대통령은 허상의 전쟁부터 끝내야 한다. 그 스스로 호수 위 달 그림자를 쫓을 게 아니라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달을 직시할 때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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