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몸담은 분야 특성상 학생들과 함께 미국 실리콘밸리를 종종 방문한다. 메타, 구글, 아마존, 애플과 같은 글로벌 기업뿐만 아니라 UC버클리, 스탠퍼드대 같은 해외 명문 대학과도 교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현지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전문가들을 만나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낮에는 실리콘밸리의 기업과 학교를 견학하고, 저녁에는 숙소 회의장에서 재직자들과 학생들이 심야까지 토론을 했다. 견학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에게 어떤 미래를 제시하고 있는가. 한국 사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최근 한국 사회는 다시금 계엄과 탄핵 논란에 휩싸였다. 정치권은 정쟁을 일삼으며 미래를 위한 논의는 사라졌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재직자들은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적극적으로 멘토링을 한다. 그들이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조직 문화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에서는 기성세대가 정쟁에 몰두하는 동안 청년들은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방황하고 있다.
정치 불신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국회 신뢰도는 9.5%(한국갤럽)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정치가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현실은 청년들에게 실망감과 의욕 상실을 안겨주고 있다.
요즘 ‘7세고시’라는 단어가 유행한다고 한다. 서울 대치동에서는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어린아이들이 마치 고시를 준비하듯 시험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 같은 입시 교육이 한국 사회에 어떤 미래를 가져올 수 있을까.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 ‘정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실리콘밸리는 혁신과 도전의 상징이지만 그곳 역시 결코 낙원은 아니다. 정보기술(IT)업계 경기 변동에 따라 대규모 정리해고가 반복된다. 빅테크조차 대량 해고를 피하지 못했다. 뛰어난 인재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엄격한 채용 및 평가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어 지속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면 쉽게 도태되는 현실도 존재한다.
미래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인재상이 필요하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창의적 사고와 도전정신을 갖춘 인재를 우선시한다.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가 강조하는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능력’이나 구글이 추구하는 ‘적응력과 협업 능력’을 통해 구체화된다. 한국은 여전히 암기력과 입시 성적으로 인재를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은 “미래의 리더는 기술과 창의력을 겸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한국인은 단순히 해당 기업의 성공 사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고방식을 경험한다.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멘토링을 통해 성장하는 문화. 이는 한국 사회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가치들이다.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단순한 성공 모델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는 태도와 사고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