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구하자’면서 ‘尹 석방’ 촉구 집회
열기 더할수록 ‘정권 교체’ 여론 커져
종교의 정치참여 명분은 공동선 기여
“믿음의 정치적 도구화 경계해야”
민주화운동 시절 정치 참여에 적극적이었던 진보 교계와 달리 ‘정교분리’를 고수했던 보수 쪽 개신교 지도자들이 정치에 뛰어든 건 진보 정부가 출범한 이후다. 이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3·1절과 6·25가 되면 ‘반핵반김 자유통일’ ‘한미동맹 강화’ ‘북한 인권 보호’를 내세워 대규모 기도회를 열었다. 2004년에는 ‘기도의 표를 모아 세상을 확 바꾸자’는 구호와 함께 한국기독당도 창당했다.
오랫동안 지켜온 정교분리 원칙을 깨려면 명분이 필요했다. 정교분리는 제헌헌법부터 명문화돼 내려오는 조항이기도 하다. 이철 숭실대 교수(종교사회학)는 교계 지도자들이 내세운 논리와 명분을 분석해 몇 가지로 추렸는데 ‘지금 한국 사회는 강도당한 사마리아인과 같아 외면할 수 없다’는 상황론, ‘김정일 악한 권세를 예수 권세로 무너뜨리자’는 영적 전쟁론, ‘교회 1만 개보다 국회의원 한 명이 선교에 이익’이라는 실용론 등이다.
전 목사, 손 목사가 광장 집회 참여를 독려하며 내세우는 명분은 상황론에 영적 전쟁론이 가미돼 있는 듯하다. 전 목사는 “국민이여 일어나라. 국가가 위태롭다”고 한다. 손 목사가 집회를 위해 만든 단체 이름도 ‘세이브코리아’, ‘한국을 구하라’이다. 여기서 싸워 이겨야 할 상대는 북한과 공산주의, 이에 우호적인 남한 정치세력이다. “대한민국을 사악한 무리들(종북 세력)에 내어줄 수 없다”(손 목사) “주사파 척결하지 않으면 나라가 북한, 중국에 먹힌다”(전 목사)는 주장이다.집회 무대에선 “종북 좌파가 바퀴벌레처럼 활약” “(진보 성향의)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을사오적” 같은 선동과 혐오 발언이 나온다. 전 목사는 “북한이 선거 개입한다”는 부정 선거론도 퍼뜨린다. 망국적 국론 분열을 치유해야 할 종교계가 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에 손 목사는 “신사참배 반대 행위도 당시엔 정치 선동으로 비판받았다”고 반박했다. 손 목사가 속한 고신 교단을 만든 사람들이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자랑스러운 역사를 언급한 것이다. 지금이 옳은 일 하려면 목숨 걸어야 했던 시절과 같나. 이제는 말할 용기가 아니라 듣는 관용이 필요한 때 아닌가.
구국 집회의 결론이 ‘계엄은 합법’ ‘윤석열 즉각 석방’에 이를 즈음이면 야당의 줄탄핵과 대통령의 탄핵심판 절차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집회 열기는 뜨거운데 중도층 여당 지지율은 급락하는 추세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정권 연장’과 ‘정권 교체’ 여론의 변화를 추적해 온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정권 연장을 원하는 여론은 한덕수 총리 탄핵안 가결 후 커지기 시작해 1월 셋째 주 오차범위 내에서 정권 교체 여론을 앞서다 일타 강사 전한길 씨의 합류로 반탄 집회 열기가 달아오른 이후 정권 교체에 뒤지는 흐름을 보였다.
개신교계에선 정교분리란 정부의 교회 간섭을 막기 위함이지 교회의 정치 참여를 막기 위한 게 아니라고 본다. 루터 말대로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왕국’에 속하면서 ‘세상의 왕국’에도 속한다. 하지만 종교집단의 정치 참여는 국가의 세속적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정교분리는 근원적으로 종교가 정치세력화해 발생하는 폐해를 막기 위해 도입된 원칙이다(성정엽 인제대 법학과 교수). 종교는 절대적 믿음의 영역이고 정치는 상대적 타협의 영역이다. 전 목사 추종 세력이 주도한 서울서부지법 난입 사태는 믿음과 타협의 영역이 혼재돼 버린 종교의 정치화, 정치의 종교화의 치명적 결과를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해방신학의 본고장인 남미 출신이지만 종교의 과잉 정치는 경계했다. 그는 “공동선을 향한 뜨거운 마음으로 사회 문화 정치 생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달라”고 당부하면서도 “믿음이 대립을 조장하려는 집단들에 이용되거나 도구화될 위험”을 경고했다. 광화문파와 여의도파 집회에는 여당 정치인들까지 합류하고 있다. 종교와 정치가 건강한 관계로 공동선을 추구하는지, 아니면 서로가 서로의 도구로 이용하면서 나라에 어려움을 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기 바란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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