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칼럼]‘멍청한 당’ 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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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2명 탄핵, 3연속 총선 패배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는 우매함 탓
‘폐족’ 친윤 물러나고 새 지도부 나서
‘사악한 당’ 견제하는 대안세력 돼야

이진영 논설위원

이진영 논설위원
‘보수는 유능하고, 진보는 도덕적’이라는 통념도 옛말이다. 보수가 무능함을 보여주고 진보가 도덕성에서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다. 미국에선 공화당은 멍청한 당(stupid party), 민주당은 사악한 당(evil party)이라고 한다. 공화당은 지적 역량이 떨어지고, 민주당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뜻인데 지금 한국 여당과 제1야당에 딱 들어맞는 이분법 같다.

여당의 사악함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을 취소한 판사를 술잔도 안 나오는 사진 한 장으로 ‘룸살롱 접대’ 의혹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버린 사건을 들고 싶다. 접대를 받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살계경후(殺鷄儆猴·닭을 죽여 원숭이를 훈계하다)란 말이 있듯 많은 판사가 ‘여당에 협조하지 않으면 X망신 당한다’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참으로 사악한 당이다.

국민의힘의 멍청함을 보여주는 사례 역시 많은데 6·3 대선에서는 이보다 더 멍청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듯하다. 윤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치러지는 선거라는 특수성, 대선은 중원 싸움이라는 경험칙을 더하면 윤과 멀고 중도에 가까운 후보를 내세우는 건 승리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그런데 윤과 가장 가깝고 중도에서 가장 먼 후보를 뽑았다. 후보 바꿔치기하려고 벌인 소동은 그 불의함과 무능함이 실패 확률 제로라는 친위 쿠데타에도 실패한 옛 1호 당원의 그것과 닮았다. 이길 생각으로 그랬다면 참으로 멍청한 당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실패에서 배우고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실패하면 다른 사람 탓을 한다’는 말이 있는데 국힘은 후자 쪽이다. 패장이 된 대선 후보가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 신념이 없었다”며 당 탓을 하고, 친윤계 의원들은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며 개혁하자는 젊은 비대위원장을 몰아세우고 있다. 윤의 폭정과 계엄을 싸고돌다 나라를 진창에 빠뜨리고 3년 만에 정권을 내준 ‘폐족’ 친윤이 무슨 낯으로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나.

우매한 탓에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고 배우지 못해 우매함이 더해지니 하는 일마다 실패의 연속이다. 10년도 안 돼 대통령 2명이 탄핵을 당해 쫓겨났고 2016년 20대(새누리당), 2020년 21대(미래통합당), 2024년 22대(국민의힘) 총선에서 내리 참패했다. 40%를 넘긴 이번 대선 득표율을 보고 ‘졌잘싸’ 한다면 오산이다. 이번이 총선이었다면 국힘 의석은 81석으로 개헌 저지선도 뚫렸다. 여당의 ‘부울경’ 지지율이 40% 안팎까지 치고 올라왔고, 4050세대는 여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굳어졌다. 선거 결과를 당 색깔로 보여주는 지도는 갈수록 파랗게 변하면서 빨간 지역은 소멸의 길로 빠져드는 추세다.

‘보수는 멍청한 당’이란 표현의 원조는 영국 보수당이다. 19세기 지성 존 스튜어트 밀이 하원의원 시절 한 말인데, 영국 보수당은 그 당시 멍청했는지 몰라도 서구에서 가장 성공한 당으로 평가받는다. ‘영국은 가끔 노동당에 투표하는 나라’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당 이름은 1830년대부터 줄곧 ‘보수당’이지만 지도부와 정책은 시대 변화에 따라 부단하게 쇄신해 온 덕분이다.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고, 노조 활동을 보장하고, 10세 이하 어린이 고용을 금지하는 입법을 주도한 정당이 보수당이다. 사립학교를 나온 백작, 후작, 남작들 차지였던 당 지도부도 공립고교 중퇴자, 잡화점 딸, 유대인, 힌두교도로 문호를 꾸준히 넓혀 왔다.

모범 사례를 찾으러 먼 곳까지 갈 필요도 없다. 국힘이 잠깐이나마 호평받던 시절을 돌아보라. 2012년 총선에서 ‘경제 민주화’로 담론을 주도해 제1당이 된 후 다음 대선에서 승리했고, 2021년엔 헌정사상 최초로 ‘0선’ 30대 당 대표를 뽑아 이듬해 대선에서 이겼다. 반대로 혁신한다면서 요란하게 당 이름만 바꾸고 알맹이는 ‘늙은 건물주와 퇴물 판검사들’로 채웠을 때, 의제를 주도하기보다 ‘운동권 청산’ ‘이재명은 아니다’라며 끌려다닐 땐 졌다. 이번 대선으로 입법과 행정 권력에 사법부 물갈이 권한까지 모두 쥔 전례 없는 절대 권력이 탄생했다. 선하고 지혜로운 사람도 감당하기 어려운 힘을 ‘사악한 당’이 갖고 있다. 그런 권력을 견제해야 할 국힘은 당내 계파 싸움엔 의욕적이면서도 여당에 대해선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무력감을 호소한다. 여전히 107석을 가진 제1야당, 없는 나라 곳간 털어 지원해준 선거보조금으로 재산을 1200억 원으로 불린 부자당이 할 소린가.

이번에도 문패만 바꿔 달고 하던 대로 하며 상대가 자빠지는 요행만 바란다면 ‘멍청한 당’이란 욕도 아까운 당이 된다. 밖에서 보는 사람들이 ‘저렇게까지 하네’ 싶을 만큼 쇄신해야 살길이 열린다. 개혁하지 않으면 개혁당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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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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