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상대국 정상의 말도 자르는 트럼프식 무례 화법[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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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의 정상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답변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스타머 총리의 말을 끊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트럼프 ‘트루스소셜’ 계정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의 정상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답변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스타머 총리의 말을 끊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트럼프 ‘트루스소셜’ 계정 캡처

정미경 전 동아일보 기자

정미경 전 동아일보 기자
△“Diplomatic Protocol In The Bin.”(쓰레기통에 처박힌 외교 예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백악관 회담이 결렬됐습니다. 일반적인 정상회담에서 볼 수 없는 장면들이 속출했습니다. ‘shouting match’(소리 지르기 시합), ‘blowup’(폭발), ‘meltdown’(붕괴). 미 언론은 난장판이 된 회담 현장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국가 최고지도자 간의 만남인 정상회담에서는 지켜야 할 에티켓이 있습니다. ‘프로토콜’(protocol)이라고 합니다. 미 국무부는 프로토콜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Well-established and time-honored international courtesy rules that have made it easier for nations and people to live and work together”(국가와 국민이 쉽게 공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확실하고 유서 깊은 국제 예절 규칙). 상대국을 대화 파트너로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예절들은 지켜주는 것이 관례입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는 프로토콜이 힘을 쓰지 못합니다. 트럼프-젤렌스키 회담을 지켜본 외교 전문가들이 하는 말입니다. ‘bin’(빈)은 ‘dust bin’을 줄인 쓰레기통을 말합니다. 예절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는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7명의 세계 정상을 만났습니다. 그때마다 무례하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미국과 협상을 앞둔 한국이 알아둬야 할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스타일을 알아봤습니다.

△“That’s enough.”(이제 그만해라)

첫째, ‘cut off’(말 자르기)입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스타머 총리가 한창 말하고 있는데 끊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습니다. 요즘 트럼프 대통령이 자주 언급하는 캐나다 합병 계획을 회담에서 논의했느냐는 질문에 스타머 총리가 “논의하지 않았다”라고 답하던 중이었습니다.“that’s enough”는 ‘그것으로 충분하다’라는 사양의 의미가 아니라 ‘이제 그만하라’라는 경고입니다. 시끄럽게 장난치는 아이들을 부모가 야단칠 때 쓰는 말입니다. 당황한 스타머 총리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상대국 정상의 말을 가로막는 트럼프 대통령의 배짱 화법 덕분에 “that’s enough”는 세계적인 유행어가 됐습니다.

불리한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상대국 정상이 말하는 도중이라도 끊는 것이 트럼프식 대화법입니다. 끊는 방식도 다른 주제로 매끄럽게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급작스러운 침묵을 강요합니다. 백악관은 회담과 관련 없는 주제였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미국 대통령은 상대국과 관련도 없는 국내 이슈를 논하는 데 공동 기자회견을 할애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If you believe that, it’s OK with me.”(저 말이 믿긴다면 나는 괜찮다)

트럼프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회담에서는 우크라이나 지원금이 논란이 됐습니다. 유럽의 우크라이나 지원금은 대출금이라 회수 가능하다는 자신의 주장을 마크롱 대통령이 수치를 제시하며 반박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it’s OK with me”(나는 괜찮다)는 상대방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고 반어법으로 비꼬는 것입니다. 공개 석상에서 상대국 정상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public humiliation’(공개 창피)은 트럼프 대통령이 1기 통치 때부터 즐겨 사용해 온 기선 제압 방법입니다.

△“More Than Number Two.”(이인자 이상)

미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정상회담에서 부통령이 전면에 나서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self-effacing political understudy.’ 부통령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표현한 단어입니다. ‘자기주장 없는 정치 대역’이라는 뜻입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으로 평가받는 딕 체니 부통령은 막후 협상에 능했지만, 회담 현장에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받는 스포트라이트를 뺏지 않았습니다.

J D 밴스 부통령은 이런 전통에서 벗어나 트럼프-젤렌스키 회담에서 튀는 존재감을 발휘했습니다. 회담 후 밴스 부통령에게 붙은 별명입니다. 2인자 이상의 임무를 수행했다는 것입니다. 부통령이 전면에 나서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과 부통령이 협공해서 약소국 정상의 발언 기회를 막고 모욕을 주는 것은 미국 외교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No Easy Way Out’(NEWO). 요즘 유행어입니다. 기존 국제질서를 뒤흔드는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전 세계가 대응책을 찾느라 분주합니다. 빠져나갈 쉬운 길은 없다는 뜻입니다. 각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길을 찾아나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정미경 전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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