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허 두 후보 모두 축구계에 기대했던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지 못했다. 66세의 신 교수와 70세의 허 전 감독 모두 63세의 정 회장보다 고령이라는 점에서 젊고 활력 넘치는 변혁의 이미지를 지니지 못했다. 두 후보 모두 축구계 개혁을 공약으로 들고나왔지만 비슷하고 당연한 내용으로 여겨져 정 회장의 50억 원 사재 출연에 비해 큰 파괴력을 지니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너무 큰 격차를 보인 선거 결과를 설명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축구협회 선거인단 구성을 살펴야 한다. 축구협회 선거인단은 192명으로 시도협회장, 프로축구(K리그1) 12개 구단 대표이사, 전국연맹 회장 등 축구협회 산하 단체장 및 임원 66명이 포함된다. 이어 추첨으로 정해진 선수 지도자 심판으로 구성된다.현직 회장에게 크게 유리한 구성이다. 축구협회 산하 단체장과 임원은 축구계를 함께 이끌어온 정 회장의 사람들로 볼 수 있다. 이들만으로도 이미 전체 선거인단의 3분의 1이 넘는 34%에 이른다. 또한 이들이 잘 짜인 행정체계와 네트워크를 통해 축구계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축구계는 어린 시절부터 선후배 관계로 다져진 수직적 문화를 지닌 네트워크 속에서 움직인다. 선수 및 지도자와 심판들은 이러한 영향력에 취약하다. 선수는 지도자들로부터, 심판은 협회 행정으로부터 소외되는 순간 생존 기반을 잃는다. 지도자들 또한 프로축구 구단 대표들과 전국 연맹 회장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처음에는 정 회장을 비판하며 사퇴를 촉구했던 한국축구지도자협회는 선거를 눈앞에 둔 1월 후보들의 공약을 비교한 결과라며 돌연 정 회장 지지를 선언했다.
선거인단 구성이 현직 회장에게 크게 유리하고, 20만 명의 등록선수 및 그 외 축구계 전체를 고루 대표하기에는 선거인단 수가 적다는 지적이 있다. 축구계 내에도 많은 분야가 있고 이들의 성향이 다를 수 있는데, 이들을 다양하게 대표하기 위해서는 선거인단 수를 늘리고 구성과 비율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또한 선거인단 수가 너무 적으면 막강한 조직력을 지닌 현직 회장이 이들을 쉽게 집중 관리할 수 있다. 정 회장은 이번 선거인단 대부분과 직접 소통했다고 했다. 후보자들에게 공개된 선거인단은 직간접적인 영향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신, 허 후보는 선거인단 구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선거인단 수를 늘릴 것을 주장했지만 선거기간 중에 이를 바꿀 수는 없었다. 결국 이러한 기울어진 환경과 도전자들의 혁신성 부족이 겹쳐 정 회장에 대한 쏠림 현상이 강화됨으로써 일반 축구팬들의 심리와는 크게 다른 결과가 나왔다. 현직 회장의 프리미엄이 지나치다는 문제는 대한체육회장 선거 때도 제기됐다. 그래도 대한체육회장 선거 때는 여러 종목 사람들이 선거를 치렀기에 축구계처럼 단일 종목에서 보이는 선후배 간의 수직적 문화 및 네트워크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덜했다. 여기에 유승민이라는 젊고 혁신적인 인물이 새바람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기적’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이기흥 전 회장의 우세가 점쳐졌고 실제로도 박빙이었다. 그만큼 기득권을 옹호하는 선거 환경이 둘러쳐져 있었다.유 회장 당선으로 일시 가려지긴 했지만 대한체육회 및 대한축구협회 선거에서는 후보 자격을 심사하는 스포츠공정위원회 구성부터 이후 과정까지 여러 문제가 제기됐다. 이러한 문제들은 기득권의 벽을 높이고, 조직 사유화의 위험성을 키우기에 개선돼야 한다.
이번 선거는 일반 팬들이 차단된 축구인들만의 선거였다. 여기서 승리했다고 정 회장이 팬들의 지지까지 회복했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그의 당선은 현재 선거 시스템이 팬심과의 괴리를 키울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의 개선도 축구계의 과제가 될 것이다. 그에게는 개혁을 통해 팬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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