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휴 사례가 아니라도 제주공항은 이착륙하기 어려운 공항으로 악명이 높다. 예측하기 어려운 강한 바람이 1년 내내 부는 데다 우리나라 최남단 지역임에도 겨울이 되면 폭설이 수시로 내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같은 제주도의 ‘극한 날씨’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다름 아닌 기후변화 때문이다.
겨울철 제주에 폭설이 내리는 원리는 이렇다. 먼저 북쪽에서 불어온 찬바람이 따뜻한 서해상을 지나면서 눈구름을 만들어낸다. 이 눈구름이 제주까지 다다르면 통상적인 눈이 온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높은 하늘에 강한 바람, 즉 제트기류가 지나가면 눈의 강도가 달라진다. 10km 상공에서 시속 200km 속도로 제트기류가 흐르면 낮은 하늘의 공기가 제트기류 쪽으로 빨려 올라가는데 이 과정에서 눈구름도 같이 휘말리기 때문이다.
낮은 하늘에서는 서해의 수증기를 공급받은 구름이 계속해서 눈구름을 발달시키고, 제트기류는 이 눈구름의 높이를 한없이 끌어올린다. 마치 여름철 폭우를 쏟아내는 구름처럼 눈구름의 규모가 커지게 되는 것이다. 통상 겨울에 제트기류가 우리나라 상공까지 내려오면 남해안이나 제주 근처까지 내려온다. ‘폭설 구름’이 제주공항에 다다르게 되는 과정이다.그런데 폭설 구름을 만들어내는 두 가지 요소인 ‘서해의 수온’과 ‘제트기류’는 모두 기후변화로 인해 높아지고, 강해지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분석을 보면 지난해 서해의 평균 수온은 17.12도로 평년 대비 1.82도나 높아졌다. 국제학술지 ‘네이처 클라이밋’에 지난해 실린 논문을 보면 기후변화로 제트기류의 속도가 약 2.1% 빨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여름은 어떤가. 한여름 우리나라에 폭염을 불러오는 북태평양 고기압은 제주도 남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이때 제주도에는 남쪽에서 바람이 불게 된다. 이 남풍은 높은 한라산을 넘지 못하고 산자락을 에돌아 양쪽으로 갈라졌다가 제주시 근처에서 다시 합쳐진다. 제주공항에는 서쪽에선 서풍이, 동쪽에선 동풍이 분다.
그러면 활주로가 동서로 뻗은 제주공항은 이착륙이 매우 까다로워진다. 비행기는 항상 맞바람을 맞고 이착륙해야 하는데, 모든 방향에서 맞바람이 아닌 뒷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통상 뒷바람이 시속 약 18km(10노트)를 넘어가면 이착륙 ‘위험 요소’로 간주하는데, 제주에는 이보다 강한 뒷바람이 수시로 분다. 한국항공대의 2023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20∼2021년 제주공항에서 발생한 복행(Go-Around·항공기가 착륙을 포기하고 다시 뜨는 것) 사례 497건 중 137건(27.6%)이 이런 상황에서 발생했다. 우리나라는 이제 여름에 40도의 폭염이 이상한 일이 아닐 만큼 계속해서 더워지고 있다.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이 그만큼 세지고 있다는 의미다. 더위와 추위, 생태계 영향을 넘어 이제 기후변화는 ‘이동할 자유’까지 가로막는 위협이 됐다.이원주 디지털뉴스팀장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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