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러운 정국에 묻혀 있지만 올해는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이정표적인 해다. 고령화사회에 들어선 지 24년, 고령사회로 전환한 지 불과 7년 만에 세계 유례없는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초고령 시대가 몰고 올 그림자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보다 20년 먼저 진입한 일본을 통해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일본의 급속한 고령화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노인들의 집단 자살과 집단 할복 아닌가.” 일본 사회는 2023년 당시 젊은 층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끈 미국 예일대 경제학과 소속 나리타 유스케 교수가 던진 이 말이 외신을 통해 뒤늦게 알려져 들끓었다. 패륜적 발언처럼 들리지만 일본에서는 그를 지지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특히 “일본 경제의 침체가 고령화사회 탓이라고 믿는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다”는 게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전언이다. 일본에는 50, 60대 아들이 80, 90대 부모를 버려 숨지게 하는 사건이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간병 피로에 지쳐 부모를 내다 버리는 ‘현대판 고려장’이다. 일부러 절도 등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자원 입소’하는 노인도 늘고 있다. 교도소 안에서 규칙적인 공짜 식사와 함께 무료 의료·돌봄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다.
이런 일본의 현실은 우리의 내일이다. 그나마 일본의 65세 이상 고령자는 인구 중 현금이 가장 많은 계층이다. 반면 한국의 노인들은 가난하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노인빈곤율 1위다. 65세 이상 임금근로자가 가구주인 가정 가운데 절반 가까운 46.7%가 월평균 근로소득 100만원 미만인 게 현실이다. 노인이 노인을 부양하는 일명 ‘노노(老老) 부양’이 급증하는 건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국내 노노 부양 세대 현황’에 따르면 2023년 말 현재 만 60~79세 국민건강보험 직장가입자 가운데 만 80세 이상 부모를 부양하는 세대는 13만1008가구에 이른다. 이 수치는 빠르게 가팔라질 것이다.
급속한 인구 고령화로 병간호가 필요한 노인과 중증 환자가 늘어나면서 2032년에는 38만~62만 명의 간병 인력 부족 사태가 벌어질 전망이다. 간병인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지만 경제적 압박은 막심한 고통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월평균 간병비는 약 370만원으로 자녀 세대인 40~50대 가구 중위소득의 60%에 달한다. 높은 간병비로 파산에 이르거나 독박 간병에 내몰린 가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등 비극적인 사건이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간병 부담으로 인한 가족 고통이 커져 ‘간병 살인’도 반복되는 현실이다.
노인을 부양하는 가족은 경제적·신체적·정서적으로 심각한 삼중고를 겪는다. 부양자의 이런 부담을 줄여주는 일이 국가·사회적 급선무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간병인 시장의 대중화다. 급증하는 돌봄 수요를 내국인만으로 충족할 수 없는 만큼 저렴한 비용의 외국인 간병인 확대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한가하게 ‘차별금지 타령’이나 하면서 외국인 간병인 임금을 국내 최저임금에 맞춰 적용하는 현실은 안타까움을 넘어 위험천만하다. 지난해 9월부터 서울 지역 가정에 도입된 필리핀 가사관리사에게는 하루 8시간 기준 월 238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월 100만원 이하로 이들을 고용하는 홍콩, 싱가포르 등과 대조적이다. 이런 비용을 내고 부모 간병인을 쓸 수 있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 문제는 아이 돌봄이 아니라 노인 돌봄이다. 거대한 시한폭탄이 이미 작동을 시작했지만, 대응은 놀랍도록 한가하다. 현대판 고려장은 남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