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민주당 '기업 주도 성장', 헛구호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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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프리즘] 민주당 '기업 주도 성장', 헛구호 되나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6월께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와 경영계는 당시 막 출간된 책 한 권을 주목했다. 노무현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변양균 씨가 쓴 <경제철학의 전환>이다. 대선 경제공약 수립 단계에 깊숙이 관여한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숨은 설계자’로 불렸고 당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그의 추천으로 발탁된 터라 책 내용이 대거 정책에 반영될 것이란 기대가 컸다.

책의 주장은 지금 봐도 꽤 설득력이 있다. 과감한 구조개혁을 통한 ‘슘페터식 공급 혁신’과 사회안전망 확충을 패키지로 추진하자는 것이다. 기업가가 생산요소의 자유로운 결합과 창조적 파괴를 할 수 있도록 해 신산업과 일자리 창출, 성장률 제고를 이끌게 하고 이 과정에서 나타날 일시적 실업 등 사회 비용은 안전망 확충으로 해결하면 장기적 포용 성장이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책은 한편으로 정규직 해고 허용 및 고용 형태 다양화, 파견 허용 업종 확대, 비정규직 활성화, 수도권 규제 완화, 금융규제의 네거티브화 등 공급 혁신 구조개혁을, 다른 한편으로 실업급여 및 공공임대주택 확대, 아동수당 도입, 반값등록금 등 기본적 삶 보장 방안을 병행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이 가계소득을 늘리는 ‘소득주도성장’과 기업 혁신을 유도하는 ‘혁신성장’을 양대축으로 삼은 것은 외견상 책의 제안을 차용한 것 같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반쪽 도입’이었다. 소득주도성장 분야는 책이 제안한 정책 외에 최저임금 급격한 인상 등이 대거 추가돼 실행됐다. 하지만 혁신성장 분야는 12대 신산업 육성 등 거창한 구호만 있었지 공급 혁신 방안이 노동계 반발 등으로 거의 채택되지 않았다. 오히려 주 52시간 상한제 도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노동 규제를 훨씬 강화했다. 문 정부 5년간 국가부채가 400조원 급증하는 동안 신산업 출현 없이 성장률만 떨어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실패한 혁신성장이 다시 떠오른 건 더불어민주당 집권플랜본부가 지난달 내놓은 ‘K-먹사니즘 미래 성장전략’ 보고서를 읽고 든 허탈함 때문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올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전면에 내세운 ‘기업 중심의 민간 주도 성장’을 구체화한 것 같은데, 문 정부의 혁신성장처럼 구체적인 공급 혁신 방안이 사실상 공란이다. ‘파괴적 혁신’을 통한 5년 내 성장률 3% 높이기, 삼성전자 6개 만들기, 수도권 5개 만들기 같은 화려한 구호만 제시한 것도 유사했다. 이후 민주당은 기업 주도 성장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하는 행보도 보였다. 반도체사업 연구개발 인력의 52시간제 예외 적용을 받아들일 것처럼 하다가 노동계와 당내 반발에 밀려 후퇴했다. 파업을 조장할 것이란 노란봉투법, 소송 남발 및 투자 위축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영계가 반대하는 이사 의무 확대 조항을 담은 상법 개정안도 밀어붙이고 있다. 모두 기업가의 자유로운 생산요소 결합과 공급 혁신을 막을 수 있는 행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5일 기자회견에서 내년 성장률을 1.8%로 제시하며 “우리의 현재 실력이다”라고 진단했다. “누군가는 고통받아야 하는데 사회적 갈등을 피하려 구조조정과 창조적 파괴를 미루다 10년간 새 산업이 전혀 도입되지 않은 결과”란 설명인데, 구구절절 옳다. 기업 주도 성장이 중도 보수를 겨냥한 선거용 슬로건에 머물지 않고 ‘경제철학의 전환’에 기반한 진정성 있는 집권 목표라면 민주당이 유념할 대목이기도 하다. 만일 진정성이 있다면 민주당은 52시간제 예외를 허용하고 상법 개정 대신 자본시장법 핀셋 규제로 대체해 달라는 기업의 요구부터 수용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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