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부(富)의 이동’이 있었다. 60대가 50대를 제치고 처음으로 ‘최고 부자 세대’에 등극한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60대 가구주의 평균 순자산은 5억2000만원이다. 50대는 5억1000만원, 40대는 4억5000만원, 30대는 2억5000만원 정도다.
언뜻 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60대의 평균 재산은 50대는 물론 40대보다도 적었다. 한국은 은퇴 기반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퇴직 후 재산이 감소세로 돌아서는 게 일반적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후 빈곤율 1위라는 불명예 타이틀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느닷없이 60대의 재산이 한창 돈 벌 나이인 50대를 넘어 최고 부자 세대가 됐다. 도대체 60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보유 주택 수, 보유 주식 규모, 자동차 구매 건수 등 부의 척도를 나타내는 세부 수치를 보면 이유가 보인다. 2010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부문에서 1위는 40대였다. 하지만 2010년 이후 50대가 추월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2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60대가 폭발적으로 재산을 늘리며 그 바통을 넘겨받고 있다. 지금 60대의 자산은 느닷없이 늘어난 게 아니다. 십수 년 전 최고 부자 세대인 ‘그 40대’가 50대를 지나 은퇴기인 60대에 접어들면서 생긴 현상이다. 1960년대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른바 86세대 얘기다.
86세대가 한국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여러모로 남다르다. ‘단군 이래 가장 부자 세대’인 동시에 ‘가장 많은 인구수를 가진 세대’다. 굴곡진 1980~1990년대 몸을 던져 민주화를 끌어낸 주역이며, 한편으론 그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자산 축적의 기회를 얻은 행운의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무렵 우리나라는 3저(低) 호황에 힘입어 초고속 성장을 이어갔다. 취업 문은 그 어느 때보다 활짝 열렸다. 당시 실업률은 역사상 최저 수준인 2.5% 안팎에 머물렀다. 공교롭게 1990년대 말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과장급 이상이던 윗세대가 대거 직장에서 잘렸다. 아래 세대인 197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좁아진 취업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다. 그렇게 86세대의 독주 체제가 형성됐다. 이후 부동산 등 가파른 자산시장 성장을 타고 다른 세대들과의 차이를 확 벌렸다.
그 86세대가 이제 직장 연공서열의 최정점을 지나고 있다. 1960년대 초반 출생자들은 은퇴와 함께 연금 수급기에 접어들었다. 이제 그 후폭풍이 시작된다. 앞으로 10~20년간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연금들은 빠르게 소진될 것이다. 당장 국민연금 기금은 6년 후 적자 전환할 전망이다. 기금 가입자가 줄고 연금 수급자는 늘어나는 역전 현상이 이미 본격화됐다. 지난해의 경우 가입자는 60만명 가량 감소한 반면 수급자는 40만명 이상 증가했다. 후세대가 얼마 동안이나 그 부담을 짊어져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남은 세대끼리 서로 짐을 덜어보겠다고 ‘박터지게’ 싸워야 할 판이다.
더 늦기 전에 부의 쏠림이 수십 년째 특정 세대에 몰려 있는 이 경직적인 구조를 깨야 한다. 정규직 중심의 고용 구조와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를 바꿔야 하고 국민연금도 하루빨리 손봐야 한다.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주는 각 직역연금도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이들의 부가 뒤 세대로 이전되도록 상속세 등의 세제 개혁도 뒷받침해야 한다. “86이 대한민국이 사라질 때까지 최고의 부자 세대로 남을지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더 이상 허투루 들리지 않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