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 뒤집기를 넘어 행동 뒤집기에 나서야 창의력이 커진다. 철학자 질 들뢰즈에서 시작하자. 서구의 이분법 역사는 옳음과 그름, 진짜와 가짜로 편을 가르고 서로를 제거하며 성장했다. 수직적 계급의 위계질서와 통제시스템을 이용했다. 반복을 거듭하며 발전했지만 성장이 더뎌지면서 갈등과 대립이 생겼다. 그는 해결책으로 줄기가 땅속으로 들어가 뿌리처럼 사방팔방 뻗어가는 식물에 착안해 수평적 '리좀' 모델을 제안했다. 질서와 위계 없이 자라다가 다른 것을 만나면 접속과 분리, 결합과 분해를 거듭한다. 장애를 만나면 뚫거나 우회하고 결합해 성장한다. 줄기, 뿌리, 몸통이 따로 없다. 질서는 있으되 위계는 없다. 동질적이고 낡은 체계에 안주하지 않고 이질적이고 새로운 체계를 받아들여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 꽃은 벌을 끌어들이려 냄새를 만들고 벌의 색깔을 모방한다. 꽃이라는 자신을 벗어나 확장을 거듭한다. 벌도 꽃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꽃이 만든 생태계의 일부가 된다. 꽃은 벌에 의해 꽃가루가 옮겨지면서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간다. 그것이 리좀 모델이다. 기존에 구축된 것을 단순히 옮기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재현하지 않고 현실을 끊임없이 개조하여 새로운 가치와 미래를 창조한다. 나의 삶을 다른 것의 삶과 엮어 변화무쌍한 생태계로 만든다. 인터넷은 미국 국방부가 군사정보 관리를 위해 만든 컴퓨터 네트워크를 개방하면서 시작했다. 세계를 온라인으로 연결해 상거래, 엔터테인먼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미디어 등 다양한 형태로 접속·일탈·변형을 거듭했다. 온라인 범죄도 발생했지만 동시다발적이고 이질적이며 불연속적인 확장은 한두 국가의 규제로 막을 수 없었다. 법령이나 자율규제 등과 충돌·우회·순응하면서 발전했다.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 모바일을 만들고 메타버스로 영토를 확장한다. 챗GPT, 딥시크 등 생성형 인공지능(AI)모델도 인터넷 위에서 태어나 리좀처럼 자라고 있다.

백화점엔 창문이 없다. 고객의 관심을 상품에 집중할 수 있다. 외부에서 오는 빛이 없으므로 조명을 활용해 상품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고객은 백화점 이곳저곳을 누비며 시각을 자극하는 상품을 찾는다. 좀 더 나아가면 어떨까. 인간은 주어진 것을 쉽게 얻기보다 찾는 것에 의미를 둔다. 점포 사이의 칸막이를 없애고 사냥터를 누비듯, 미로를 탐험하듯 어떤 브랜드를 통과해 또 다른 브랜드와 다른 곳으로 자연스레 넘어가는 재미있는 '땅속 환경'을 만들면 좋겠다. 시각을 넘어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 융·복합적 감각으로 접촉면을 넓혀야 한다. 바야흐로 고객이 백화점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
모든 동식물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는 일상을 '반복'하지만 거친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차이'를 찾지 못하면 멸종한다. 차이를 찾거나 만드는 데 행동을 집중한 것만 살아남는다. 항상 가던 길을 버리고 낯선 길로 가보자. 목표에 가장 가까운 길만 찾지 말고 멀리 돌아가는 것도 좋다. 매번 하던 운동 말고 다른 운동을 해보고 운동순서도 바꿔 보자. 머리까지 피가 돌게 하자. 클래식음악을 좋아했다면 댄스음악을 즐겨보자. 낯선 언어를 배워보자. 편안함을 버리고 어색함을 찾자. 창의란 조건과 한계를 깨고 달리 행동할 때 다가온다. 잘못된 교육은 창의를 감옥에 가두고 누구에게나 똑같은 목표를 준다. 똑같은 행동을 요구하고 우열을 따져 대학과 직장을 분배한다. 산업화시대엔 통했지만 이젠 미래를 가로막는 족쇄다.
차이를 찾고 만드는 행동이 중요하다. 일상의 반복에서 불량이나 다른 것이 나왔을 때 다시 보자. 동료들과 토론하고 문헌을 찾아보자. 뒷날을 위해 기록하고 관리하자. 불량도 모아 두자. 언젠가 '차이'가 될 수 있다. 나중에 다시 꺼내 연구하고 실험하자. 3M의 포스트잇도 접착력이 떨어지는 불량에서 시작했다. 다른 것과 결합해 보고 떼어놓고 다시 보자. 반대를 극복하려면 행동은 다소 거칠어도 좋다. 생각을 넘어 행동으로 보여야 창의력이 자란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