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는 영희만 쫓아다닌다.]
이 문장을 뜯어보는 것이 오늘의 할 일입니다. 한 국문법 책(아래 ※ 이하 참고)은 문장 의미를 두 가지로 봅니다. '(철수가) 다른 사람은 쫓아다니지 않고 영희만 쫓아다닌다'가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다른 것은 하지 않고 영희를 쫓아다니기만 한다'입니다. 보조사(補助詞) '만'의 의미 기능, 즉 [유일 한정]이 미치는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다고 책은 설명합니다. 이를 개념화하여 '보조사의 작용역(作用域)'으로 분류해 놓았습니다. 말이라는 게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하는 금언을 실감하게 하는 일종의 생각 실험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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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고형규]
우리말은 교착어입니다. 교착(膠着)은 '아주 단단히 달라붙음'을 뜻합니다. 명사, 대명사, 수사 등 체언에 조사가 붙습니다. 동사, 형용사 등 용언과 서술격 조사(이다)에는 어미가 붙고요. 국어의 교착어다운 특징입니다. 이 가운데 조사를 우리는 토씨라고도 합니다. 크게 보아서는 조사라 하겠으나 엄격하게 따지면 그 조사를 돕는다는 개념의 또 다른 그 무엇이 바로 도움토씨, 즉 보조사입니다. 체언, 부사, 활용 어미 따위에 붙어서 어떤 특별한 의미를 더해 줍니다. '만' 외에도 '은', '는', '도', '까지', '마저', '조차', '부터' 따위가 있습니다.
보조사의 작용역 사례를 하나 더 보탭니다. 책은 [부터]의 쓰임을 예시합니다. '두 시부터 공부하자'는 무슨 뜻인가요? 말 그대로 공부를 '두 시'에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시작점을 알려줍니다. 이를 [두 시에 공부하는 것]부터 하자고 해석하면 곤란합니다. 이에 비해 밥 먼저 먹은 뒤 영화를 볼지, 영화 보고 나서 밥 먹을지 고민하던 끝에 '밥부터 먹자' 한다면 이것은 [밥을 먹는 것]부터 하자는 뜻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 '부터'가 범위의 시작을 나타낼 땐 작용역이 '두 시'이지만 일의 순서를 나타낼 때는 작용역이 '밥을 먹다' 전체라는 것입니다. 부품이 기계 품질을 좌우합니다. 보조사 하나로도 문장 전체는 흔들릴 수 있고요. 저 위에서 [이 문장을 뜯어보는 것"만"이 오늘의 할 일]이라고 말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유현경 한재영 김홍범 이정택 김성규 강현화 구본관 이병규 황화상 이진호, 『한국어 표준 문법』, 집문당, 2019, p. 306. '보조사의 작용역' 전체 인용
2. [이런말저런글] 그 '에'와 헤어질 결심 (송고 2025-03-14 05:55) - https://www.yna.co.kr/view/AKR20250313083700546
3. 표준국어대사전
4.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8월14일 05시55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