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에서 만나는 표현이 있습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이렇다저렇다 말하면 아랫사람이 받들듯이 호응하며 하는 말입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입니다.
여부(與否. 더불어 여 아닐 부) 의미는 둘입니다. 하나는 '그러함과 그러하지 아니함'이고 다른 하나는 '틀리거나 의심할 여지'입니다. 위에서 예로 든 여부는 주로 있다, 없다와 함께 쓰이는 두 번째 의미입니다.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옳습니다.] 하는 언사입니다.
사전은 [암, 그렇고말고. 당연하지. 여부가 있나.] [사장님 명령인데 당연히 해야지. 여부가 있겠어요?] [아, 그래요. 그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소작 일이라면 김 형하고 내가 들어 못할 것이 무어겠소? ≪송기숙, 암태도≫]라고 용례를 제시합니다.
요즘에는 장난기 섞어 말할 때나 씁니다. 살갑게 지내는 벗에게 뭐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고 예스럽게 예를 갖춰 말하면 싫어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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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말로 빈번하게 쓰는 것은 첫 번째 의미로서입니다. 어법에 어긋나게 쓰는 경우도 많지요. 바르게 써야 할 단어 목록에 단골로 오르는 이유입니다. 흔한 오류는 이렇습니다. 진실 여부 하면 되는데, 진위 여부 합니다. 그저 진위로 쓰면 됩니다. 성패 여부는 또 뭡니까. 성패 하면 충분합니다. 강조점 차이에 따라 성공 여부, 실패 여부로 써도 될 테고요.
알 것 같습니다. 이 여부는 단일 의미를 가진 명사 다음에 씁니다. 진위는 진실과 거짓, 성패는 성공과 실패를 각각 뜻하기에 그런 명사가 아닙니다. 진실, 성공, 실패는 둘이 아니라 하나의 의미이므로 여부를 동반할 수 있겠고요.
쉬운 것 같지만 굳은 언어 습관 탓에 자주 틀립니다. 여부를 유무(有無. 있음과 없음)처럼 쓰는 예도 발견됩니다. A 씨가 응시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질 땐 자격 유무입니다. 여부 아닙니다. B 제도의 효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때도 효력 유무입니다. 여부 아닙니다. C 단체가 낸 성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점검할 때도 성과 유무이지 여부가 아닙니다. '그러함과 그러하지 아니함'이냐 '있음과 없음'이냐를 구별해야 실수를 줄입니다. 이것은 여부(틀리거나 의심할 여지)가 없는 참말입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국립국어원, 기자를 위한 신문언어 길잡이, 2013
2. 중앙일보, 새 우리말 바루기 101. '여부' 와 '유무' / 입력 2004.11.24 17:49 업데이트 2004.11.25 08:53 - https://www.joongang.co.kr/article/416796
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3월07일 05시55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