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말저런글] 빨래는 왜 방망이로 두드려 빨까요

2 weeks ago 6

선택할 여지 없이 손, 발로 빨래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세탁기가 없을 적 이야기입니다. 그땐, 때 빼는 데 빨랫방망이 도움이 컸습니다. 빨랫비누, 빨래판, 큰 대야도 요긴했지요. 가끔은 빨랫비누로 빨래만 하진 않았습니다. 머리를 감고 거품을 내어 면도도 했습니다. 빨래판은 리듬을 타 박박 긁고 탁탁 치면 잠깐 타악기가 되었습니다. 빨랫방망이는 또, 집에 든 도둑에 맞서 손에 쉽게 닿을 곳에 둬야 좋을 상상의 무기이기도 했습니다. 야구방망이, 연탄집게와 함께 말입니다.

이미지 확대 홍두깨

홍두깨

[촬영 안 철 수, 재판매 및 DB금지] 국립민속박물관
(연합뉴스 DB)

한국 민속을 들여다보다 책에서 '빨래는 왜 방망이로 두드려 빨까' 하는 물음을 만났습니다. 통돌이 세탁기니 봉 세탁기니 하는 것들의 원리를 들은 기억의 조각이 남아있어서 대강 짐작할 수 있었지만 딱 부러지는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책은 방망이 두드리기가 일으키는 아주 공기 방울의 효능을 귀띔했습니다. 공기 방울들이 옷감 사이사이에 낀 때를 밀어내는, 일종의 공기 방울 세탁법이라는 이름을 알려주면서요. 그렇습니다. 방망이를 제대로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제대로 공기 방울이 일어나 제대로 때를 밀어낼 수 있습니다. 제대로 빨래가 되는 것입니다.

경제학자 장하준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세탁기에 대해 논평합니다. 세탁기가 인터넷보다 세상을 더 많이 바꾸었다고요. 강렬한 인상을 남긴 비유입니다. 가사노동은 여성 몫이라는 주장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시절, 방망이 두드리느라 사람들은 너무 많은 시간과 노동을 들였습니다. 젖은 빨래만으로도 짜증이 나건만 마른빨래까지 힘들여 두들겨대야 했던 경우도 있습니다. 마른빨래를 다듬으려고 두들기는 데 쓰인 방망이는 홍두깨라고 했습니다. 박달나무를 70㎝ 길이로 하여 가운데를 약간 굵게, 가장자리를 가늘게 깎아서 만든 것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속담은 널리 쓰입니다. 별안간 엉뚱한 말이나 행동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은 알려줍니다. 자다가 봉창 두드려서도 안 될 일이지만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두들겨서도 안 될 일입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글 김은하 그림 이원우, 『한눈에 보는 우리 민속 오천년』, 웅진씽크빅, 2005

2. 장하준 지음 김희정 안세민 옮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도서출판 부키, 2011

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2월26일 05시55분 송고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