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칼럼]탄핵되든 복귀하든 윤석열은 보수 재건의 중심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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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계엄 오판으로 만약 야당 집권하면
행정·입법 완전 장악… 나라 항로 바뀔 수도
尹 설령 복귀해도 리더십·신뢰도 상실
보수는 尹 연연 말고 새 리더십 창출해야

이기홍 대기자

이기홍 대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25일밤 68분간의 헌법재판소 최후 변론 중 40%가량을 야당과 좌파가 저지른 ‘폭거’ 사례를 열거하는 데 할애했다. 전체 1만9341자의 변론 가운데 7637자에 달했다.

<국정원 대공수사권 박탈→간첩법 개정 거부→국방예산중 핵심 감시정찰예산 삭감→방산물자 수출 발목잡기→ 한미일 군사훈련 비난 등 군의 안보활동 방해 →대통령 취임전부터 탄핵 공세→입법폭주→장관 방통위원장 감사원장 검사 판사 등 공직자 줄탄핵 → 예산폭거…>

물론 뉴스를 매일 접해 온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필자 역시 그런 야당의 행태를 칼럼에서 다룬 게 15회가량에 달한다.

그런데도 옴니버스식으로 열거된 사례들을 보니 새삼 놀라웠다. 정말로 지난 2년 반 동안의 이재명 민주당은 극악스러웠다. 건국 이후 이런 야당은 없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윤 대통령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묻고 싶었다.

“그럼 그동안 대통령은 뭘 하고 있었나?”

대통령이 국민에게 실상을 알리고 경각심을 호소할 기회와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확성기를 가진 자리다. 기자회견을 매일 열어도 언론은 생중계하고 대서특필해 줄 것이다. 대통령이 수시로 마이크를 잡아 야당의 행태가 국익에 미칠 영향을 진솔하게 설명하며 자제를 호소하는 소통을 했다면, 국가 원로들을 포함해 중도와 보수 전체가 호응했을 것이다. 그런데 취임 100일 기자회견 이후 1년 9개월간 한 번도 회견을 안 하며 국민과의 소통을 거절한 것은 윤 대통령 본인이었다. 국민이 야당의 폭거를 모르거나 다 잊거나 덮어주려 했던 것도 아니었다. 지난해 4월 총선은 투표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여당의 압도적인 승리가 예상됐었다. 국민은 이재명 민주당의 오만과 폭주를 심판할 마음을 다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걸 스스로 차버린 게 윤 대통령 본인이다. 오로지 아내만 감싸고 돌다 정권의 도덕적 기반을 무너뜨리고, 고집불통 버럭 행태로 야당보다 더 거만하고 오만한 이미지를 굳힌 자업자득이었다.

보수 진영의 위임을 받아 성루에 선 수성(守城) 총사령관으로서의 책임을 방기하다 기껏 대책이라고 내놓은 게 황당하고 어설픈 계엄이었다.

그 결과가 뭔가. 만약 탄핵이 인용되고 그 여세로 5월 대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하면 87년 민주화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행정·입법 권력을 진보(좌파) 진영이 완전 장악한 체제가 된다. 물론 과거에도 여대야소는 있었지만 기껏해야 과반을 한두 석 넘긴 데(2004년 열린우리당 152석, 2008년 한나라당 153석, 2012년 새누리당 152석) 불과했다.

다수당의 법안 일방 처리를 막는 장치인 선진화법(2008년 제정)을 무력화시키는 패스트트랙을 통해 모든 입법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5분의 3 의석(180석)을 차지한 정권은 2020년 코로나 총선에서 180석을 차지한 문재인 정권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는 정권 임기가 2년밖에 안 남아 대선을 의식해야 하고 부동산 실정(失政) 등으로 정권의 힘이 빠진 상태였다.

그런데 만약 현 민주당이 5월 대선에서 집권하면 최소한 2028년 4월 총선까지 3년간은, 임기 초의 무소불위 대통령과 슈퍼 의석 여당이 일사불란하게 수십, 수백 개의 이른바 개혁입법(좌파 숙원 법안들)을 통과시키고 경제·사회·공영언론·문화·역사 등 나라 구조 전체를 바꿔 놓는 ‘대변혁’의 시기가 될 수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명시한 헌법에 위배된다는 논란이 일어도 한때 좌파 혁명 노선을 추구했던 노동단체 간부 출신 재판관을 포함해 우리·국제법연구회 출신들이 다수 포진한 헌재가 최대한 폭넓게 진보적으로 헌법을 해석해 줄 것이다. 나라의 항로가 지금까지와 많이 다른 방향으로 갈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헌재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을 생각할 때 유념해야 할 대목이 있다.

한국의 대통령 탄핵은 미국과는 의미가 다르다. 미국은 대통령이 탄핵돼도 정권 자체는 유지된다. 러닝메이트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해 잔여 임기를 채우기 때문이다. 닉슨이 탄핵위기에 처해 사임하니 같은 당 소속 부통령인 포드가 승계해 잔여 임기를 채운게 그 예다. 국민의 4년 임기 정권 선택 자체가 무효화되지는 않는 것이다.

대선은 대통령 개인을 뽑는 선거인 동시에 나라의 항로에 대한 선택이다. 앞으로 5년간 우리나라가 이 방향으로 가길 원한다고 국민이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통령 개인의 허물로 인해 국민의 5년짜리 결정 자체가 무효화된다. 다른 공직자와 달리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 판단은 헌법 위반 정도의 심각성이 공직 권한을 박탈하기에 충분한지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의 5년짜리 체제 선택 결정 자체를 무효화할 만큼 중대했는지도 판단해야 한다.

민주당에 이런 판을 열어준 윤 대통령은 얼마전까지도 탄핵이 당연히 기각될 것으로 확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계엄 선포 때도 드러났지만, 객관적으로 판세를 읽고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에 대해 의구심이 생길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부산 엑스포 유치나 지난 총선의 결과가 나오기 직전까지도 승리를 확신했다는 외눈박이 판단력, 즉 ‘자기 객관화 능력 부재’의 연장선상이다.

수감 후 여당 지도부와의 면담 때 윤 대통령은 당이 왜 안 움직이느냐고 불만을 터뜨렸고, 보다 못한 당 간부가 “왜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어린애처럼 칭얼대느냐”고 질타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설령 탄핵이 기각돼 복귀한다고 해도 보수 재건의 중심축이 될 능력도 자격도 잃었다. 이미 리더십은 바닥을 드러냈고. 신뢰 자본을 까먹었다.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보수 진영 재건 움직임에서 윤석열이라는 이름은 키워드에서 지워야 한다. 윤석열에 대한 입장이 새 리더십 선택의 기준이 돼선 안 된다. 윤석열을 중심에 놓으면 범보수 진영이 결집될 수도 없고, 설령 뭉쳐진다 해도 그 한계는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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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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