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공급난에 '소아·지방의료' 고사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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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 소모성 의료기기(치료재료) 공급난으로 소아 환자와 지방 거주 환자가 제때 진단 및 치료를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저수가 건강보험제도 때문에 의료기기 기업들이 국내 시장 진입을 꺼리는 가운데 대표적인 의료 취약계층부터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기기 공급난에 '소아·지방의료' 고사직전

◇곳곳에서 진단·치료 멈춰 서

20일 의료계에 따르면 ‘선천성 거대결장증’(히르슈슈프룽병) 진단이 곧 불가능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는 소아 5000명 중 한 명꼴로 발생하는 희소 질환으로, 선천적으로 장의 운동신경세포가 없어 변이 내려가지 않는 병이다. 이를 진단하려면 직장 내 세포에 대한 생체검사가 필요한데 이때 필요한 직장용 흡인생체검사기와 생체검사용 카테터가 국내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국내 유일한 공급사인 이탈리아 삼보바이오메디카가 폐업했기 때문이다.

정은영 계명대 동산병원 소아외과 교수는 “다른 해외 업체 제품은 애초에 낮은 수가 때문에 국내 의료기기 인허가도 받지 않은 상황”이라며 “지금 사용하는 제품이 다 떨어지면 밀수해서라도 공급해야 할 판”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영남대병원에선 이미 선천성 거대결장증 진단을 멈췄다”고 말했다.

인공혈관도 공급 위기다. 전국에서 매년 약 20~30명의 환아가 인공혈관이 쓰이는 수술을 받는다. 그러나 인공혈관 물량을 댈 수 없어 하나의 인공혈관 제품을 여러 개로 쪼개 사용하는 형편이다. 더구나 미숙아, 신생아, 소아용으로 다양한 크기의 인공혈관이 필요하지만 국내에선 한 종류(3.5㎜)만 겨우 구할 수 있다. 곽재근 서울대 소아흉부외과 교수는 “너무 어린 선천성 심장질환 환자는 사용할 수 없는 크기”라며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는 손쓸 방법이 없어 그사이 여러 합병증을 겪거나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남소현 대한소아외과학회 기획위원장은 “소아 환자가 극소수라는 이유로 정부가 피해 실태 파악조차 안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불필요한 수술로 이어지기도

이런 공급난에 수도권보다 지방 환자가 더 큰 피해를 보고 있다. 극히 적은 수의 치료재료가 수입되면 환자가 많은 서울 대형 병원 위주로 먼저 공급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담관 폐색이나 협착 시 필요한 수술(경피적담관배액술)에 사용되는 미국 쿡메디컬의 ‘스톤바스켓’이다. 피부 아래로 들어가 담석을 빼내는 장치로, 내시경 시술로 담석을 제거하기 어려운 환자에게 사용되는 치료재료다. 국내에는 6개월에 12개만 공급돼 품귀 현상을 빚는 제품으로 지방에는 사실상 공급이 중단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 내 가격이 미국의 10분의 1에 불과해 저마다 국내 공급을 기피한 영향이다.

김영환 계명대 동산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12개면 한 병원에서 한 달도 안 돼 다 사용할 분량”이라며 “병원은 어쩔 수 없이 일회용인 이 제품을 다회용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위험은 환자가 고스란히 진다. 일회용인 스톤바스켓을 여러 번 사용하다가 환자 몸 안에서 제품이 고장 나거나 깨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간단히 시술받으면 해결되는 문제인데도 이 제품이 없어 복잡한 수술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다”고 지적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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