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시진핑 중국 주석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며 중화(中華·세계 중심은 중국) 개념을 정립한 진(秦)시황제에 비유된다. 강력한 장악력으로 대제국을 이끌며 3연임을 넘어 4연임을 바라볼 정도여서다. 한자는 다르지만, 그의 성(姓)이 시 씨인 점도 무관치 않다. 국제 사회에선 이웃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함께 철권통치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둘 다 사회주의 제국에서 장기 집권 중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한국인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칭하자면 장기 독재자다. 영구 집권 이야기마저 나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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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그 누구도 험담조차 하기 어려웠던 시 주석의 입지가 요즘 흔들리는 듯한 징조가 엿보여 국제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대 정적이었던 '충칭의 별' 보시라이가 처참히 파멸한 이후 아무도 범접 못 했던 권좌에 이상설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 이상설, 건강 이상설이 나돌더니 반중(反中) 단체와 일부 외신들에선 심지어 실각설을 거론한다. 십여 년 이상 언론과 소문까지 통제할 정도였던 그에게 이런 설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상황이긴 하다.
'시진핑 실각설'은 미국 국방정보국장과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하며 최고급 기밀을 다뤘던 마이클 플린이 최근 중국의 권력 이동을 공개 주장하면서 본격 수면 위로 올라왔다. 미 외교관 출신 우파 인사도 시 주석의 건강이 나빠 스스로 2선 후퇴할 것이라는 주장을 펴며 가세했다. 그러자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에선 시 주석 실각설이 상상을 덧입혀 빠르게 확산 중이다.
실각설 근거들은 이렇다. 우선 군부에서 시 주석의 최측근 인사들이 숙청되거나 실각하는 사태가 잇따르면서 군 장악력을 상실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시 주석이 국방부장에 임명한 웨이펑허와 리상푸가 연거푸 부패를 이유로 숙청됐고 군 서열 5위 먀오화도 최근 실각했다. 서열 3위인 허웨이둥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의 숙청설도 나돈다. 이처럼 군 수뇌부에서 '시파'가 배제되는 가운데 군 서열 2위이자 차기 중 하나로 거론되는 장유사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시 주석을 등지고 퇴장한 장면은 군부가 반기를 든 게 아니냐는 설을 부추겼다.
여기에다 임기가 보장된 공산당 중앙정치국원들의 연쇄 보직 이동이 단행된 것도 권력 누수설에 힘을 보탰다. 이미 공산당 내부에서 권력 투쟁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국사(國事)를 결정하고 집행할 '당중앙의사결정협조기구'를 만든다는 점도 심상치 않게 받아들여졌다. 브라질에서 열릴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 사상 처음 불참하는 등 공개 활동과 공식 메시지가 줄어든 점도 근거로 제시됐다.
이런 징후들은 시 주석의 입지 약화를 예측해볼 근거는 될 수 있어도 실각설 자체는 '미확인 루머'일 가능성이 아직은 크다. 특히 사회주의 일당독재국가는 통제사회이므로 외부에서 정확한 정보를 알아내기 어려우니 섣부른 예상은 금물이다. 이런 소문을 모를 리 없는 중국 정부도 대응에 나선 듯한 모습이다. 시 주석은 정치국 회의와 중앙재경위원회 등 주요 회의를 잇달아 주재하고 통일성을 강조한 메시지를 내놓는 등 대외적으로 부쩍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신화통신을 비롯한 관영 언론들도 일제히 지도자의 선정을 선전 중이다.
실각설과 군부 반기설은 시 주석의 오랜 권력 독점이 자연스레 야기한 내부 권력 투쟁의 산물이란 분석도 있다. 중국 권력의 3대 계파인 태자당, 공청단, 상하이방 가운데 시 주석은 태자당 출신이다. 태자당은 혁명 원로 자제들로 이뤄진 금수저 집단인데, 잠재적 정적으로 지목된 장유샤 역시 태자당 출신이다. 과거 시 주석과 경쟁했던 보시라이도 태자당의 황태자로 불렸다. 문제는 태자당 내에서도 시 주석의 장기 집권에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시 주석이 자기 계파인 '시파'를 만들어 분화를 시도 중인 점도 내부에서 좋게 보일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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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석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신조를 가장 잘 실천한 후계자로 평가된다. 그의 임기 중 라이벌로 평가된 인물들은 단호히 제거됐다. 시 주석은 또 마오쩌둥 이후 유일하게 사실상의 개인 우상화도 시도했다. 2018년 중국 헌법에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자기 실명을 넣은 사상을 명기한 것이다. 근대화의 아버지 덩샤오핑조차 자기 이름을 '사상'에 넣지는 않았다. 중국 교육부는 이후 국가교육과정에 시진핑 사상을 포함했다. 시 주석이 앞으로도 장기간 권좌를 유지해 '마오주의'를 넘어설 시진핑 사회주의가 정립될지, 아니면 새로운 피가 나타나 또 다른 신사회주의를 선언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lesli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7월04일 08시50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