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중국제조 2025'는 시진핑 중국 주석이 지난 2012년 공산당 총서기에 오르며 통치 철학이자 국정 목표로 제시했던 중국몽(中國夢)의 양대 과제 중 하나다. 당시로부터 13년 뒤인 2025년에 미국을 넘어 세계 최대의 최첨단 기술 제조국으로 도약한다는 원대한 목표였다. 그리고 그 목표연도인 올해가 이미 절반가량 지났으니 '꿈'의 성취는 일단 무산됐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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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EPA=연합뉴스) 2021년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톈안먼 광장에서 중국몽의 부흥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중국제조 2025는 단순히 최고 기술국이 된다는 선언이 아니었다. 이 프로젝트에는 반도체, 양자 컴퓨터, 인공지능(AI), 항공우주, 바이오테크 등에서 1등이 되겠다는 세부 목표가 포함됐는데, 사실 이들은 모두 군사력과 직결된 최첨단 분야다. 첨단기술 패권은 군사 패권과 동의어이므로 패권국 미국으로선 절대 허용할 수 없는 것들이다. 선택의 여지 없이 저지해야 할 도발로 받아들인 셈이다.
중국제조 2025의 시한 내 달성 실패는 사실 시작할 때부터 예고됐다. 동네 조폭도 이인자가 두목을 제거하려 할 땐 끝까지 극비보안을 유지하는데, 하물며 국제 무대에서 이인자가 일인자를 끌어내리겠다고 공개 발언하는 실기를 한 건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뛰어난 지도자로 꼽혔던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 유훈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미국은 시 주석의 중국몽 선언 이후 지금까지 집요하고 구체적인 저지 계획을 이행해왔고, 이는 대체로 주효했다고 평가받는다.
미국은 심지어 확인 사살하듯 압박 수위를 더욱 높여가고 있다. 최근 미 상무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 TSMC의 중국 내 공장에 대한 미국산 장비 공급을 제한한다는 방침을 통보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아직 발표할 만큼 세부 사항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이들 글로벌 메모리 업체들이 중국 내 공장에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를 도입할 때마다 미 행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첨단 반도체 제조에 없어선 안 될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이미 2019년부터 중국으로 반입되지 못하게 했던 대중국 봉쇄 정책이 계속 강화 중이라는 신호다. 작년엔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대중 수출길까지 막아버림으로써 중국의 'AI 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주요 대학과 연구소에서 중국인 유학생, 방문 교수, 연구원을 상대로 한 신원 조회 수위를 한층 올려 추방하는 작업도 병행 중이다. 미국의 첨단 기술과 지식이 중국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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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국방부는 15일 미국 B-1B 전략폭격기가 전개한 가운데 한미 연합공중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우리 공군의 F-35A, F-16 전투기와 미국의 F-16 전투기 등이 한미 연합공중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2025.4.15 [국방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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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위기를 예사롭게 여겨선 안 된다. 반도체 기업은 물론 정부 관계부처와 국회도 미·중 대결 추이를 주시하며 발 빠르게 대비하고 냉정히 선택해야 한다. 미·중 충돌은 한쪽이 굽히거나 쓰러질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대전제 아래 대외 전략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 안보의 핵심축인 한미 동맹과도 연결돼 있다. 최근 미국 국방부 장관은 싱가포르 아시아안보대화에서 아시아 동맹국들이 안보 지원은 미국에서 받고 경제 공조는 중국과 한다는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 기조를 띠는 데 대해 경고음을 냈다. 공개 석상에서 미 고위 당국자가 안미경중을 직접 거론하며 동맹국을 상대로 부정적 메시지를 전할 정도라면 행동 계획도 이미 준비돼 있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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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6월24일 09시52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