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독일 총선에서 승리한 중도우파 기독민주당(CDU) 대표 프리드리히 메르츠만큼 흥분한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유럽의 중심 독일에서도 자신의 정치철학이 거의 완벽하게 구현된 덕이다.
CDU 연합과, 그들에 이어 2위로 도약한 강성 우파 ‘독일을위한대안(AfD)’이 모두 대표 공약으로 삼은 게 반이민이다. 트럼프의 핵심 정책이기도 한 반이민은 우파 문화전쟁인 ‘워크(woke) 타파’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이슈다. 다양성, 약자 배려, 관용이라는 워크 가치와 사회 전통 규범 및 법질서라는 우파 가치가 첨예하게 충돌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우파 정치인들에게 이민 문제는 정치공학적 아젠다이기도 하다. 이민자·난민들은 워크를 추종하는 좌파를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어 ‘워크로 포장한 유권자 수입’, 곧 정치적 이익을 감춘 위선이라는 지적이다.
트럼프는 독일 총선을 앞두고 좌우 심복 격인 JD 밴스 부통령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독일에 급파했다. 이들은 내정간섭 논란을 일으키면서까지 AfD 등 특정 정당을 지원사격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막연한 고립주의가 아니라 자신들의 가치관과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 대해선 타국 정치에도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한다는 얘기다. 반이민에서 탄소중립에 이르기까지 트럼프와 ‘죽이 맞는’ 나이절 패라지의 영국개혁당은 머스크의 지지에 힘입어 5월 지방선거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다. 반면 트럼프와 갈등을 빚고 있는 캐나다 멕시코 덴마크 등은 모두 좌파 정권이다.
트럼프는 유럽 중심부에 반이민, 안티 워크 교두보를 마련한 것은 물론 자신의 ‘아바타’라고 할 만한 인적 네트워크도 확보했다. 새 총리 후보 메르츠는 같은 기민당이면서도 앙겔라 메르켈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을 정도로 정반대 성향으로, 메르켈을 ‘소 닭 보듯 했던’ 트럼프와는 찰떡 케미다. 반이민은 물론 원전 유턴 등 기후·에너지 정책, 감세, 반중·반공 노선 등 대다수 분야에서 트럼프와 높은 싱크로율을 보인다.
독일 총선과 비슷한 시기에 미국 최대 보수정치 행사인 ‘보수정치행동회의(CPAC)’가 열렸다. 트럼프가 폐막식에 참석해 직접 연설하고 전 일정이 폭스TV를 통해 생중계될 정도로 큰 행사다. 무엇보다 이번 CPAC에서는 한국의 탄핵정국 관련 발언이 상당수 나왔다. ‘미국 보수가 사랑하는 천재’라는 평가를 듣는 트럼프 1기 국제형사사법대사 출신의 모스 탄 교수, 트럼프가 ‘위대한 중국통’으로 존경하는 고든 창 변호사, 세계 최대 민간 군수 기업 블랙워터 설립자인 에릭 프린스 등이 연사로 나섰다. 그들은 한국 상황을 매우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지면에 그대로 소개하기 곤란할 정도로 신랄한 표현도 많았다.
공통적인 인식은 “좌파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제거하고 정부를 장악하려 하고 있다”(고든 창), “북한과 중국 공산당이 지원하는 대규모 국가 전복 활동이 한국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다”(에릭 프린스) 등의 말에서 읽을 수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언급도 빠지지 않았다. “미국과 유엔 안보리 제재를 위반하면서까지 북한에 수백만달러 송금”(모스 탄), “친북 친중 성향에 반미 친공산주의적 입장”(고든 창) 등 쌍방울 대북송금사건과 이 대표의 정체성을 문제 삼았다. CPAC 공식 만찬에서는 트럼프의 핵심 측근으로 꼽히는 스티븐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중국 공산당의 개입 속에 우리의 동맹인 한국이 위기다. 트럼프가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미국 정가에서는 1차 탄핵 사유서 중 ‘가치외교 파문’은 물론 대북 확성기·대북 전단을 외환죄 근거로 제시한 점, 민주당의 반간첩법 확대 제동, 감액 예산 폭주로 마약 수사 예산 전액 삭감 등도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밴스 부통령은 이번 CPAC에서 “우정은 공유하는 가치에 기반을 둔다”고 했다. 1기 때 메르켈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트럼프는 메르켈에게 통보도 없이 주독 미군 감축을 지시했다. “더 이상 좌파 정치는 없다”는 독일 총리 후보 메르츠에 대해선 벌써 “역사상 미국과 가장 호흡이 잘 맞는 독일 총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