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중국 생성형 AI 딥시크를 차단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가장 강력하게 대응하고 나선 곳은 역시 미국이다. 연방 의회가 정부 기관 기기에서 아예 쓰지 못하도록 ‘딥시크 금지법’ 제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미국 의회 대응은 신속한 데다 일사불란하다. 딥시크를 통해 중국으로 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나오자마자 공화·민주 양당 의원이 초당적 협력으로 공동 발의했다. 미국 의회는 예산안 처리를 놓고 행정부 업무가 마비되기 직전까지 갈 정도로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사안만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굳건히 손을 잡는다. 이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인 지난해 12월에 중국과의 전략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조선업 강화 법안을 초당적으로 발의했다. 딥시크처럼 중국으로 정보 유출 의혹이 제기된 틱톡의 강제매각 법안 또한 초당적으로 처리했다. 2차 대전 후 민주당 해리 트루먼 행정부 때 야당인 공화당 상원의원 아서 반덴버그의 “정쟁은 국경에서 멈춰야 한다”는 말처럼 국익이 걸린 외교안보 분야에서만큼은 여야가 따로 없다.
이 대목에서 소환되는 것이 간첩죄를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형법 98조 개정 건이다. 지난해 국군정보사령부 군무원의 해외 블랙 요원 정보 유출 사건과 ‘공산당원’ 중국인 유학생의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일대 불법 드론 촬영 사건에 간첩죄를 적용하지 못하면서 불거졌다. 현행 간첩죄가 ‘적국’인 북한을 위한 간첩 행위만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 탓인 게 알려지면서 간첩죄 범위 확대에 대한 여론이 일어 지난해 1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소위를 통과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적극적이던 더불어민주당이 느닷없이 태도를 바꿔 이후 절차가 멈춰 선 상태다. 법안심사 소위까지 통과한 법률안에 대해 앞뒤 맞지 않게 공청회를 추진한다고 했다가 지금은 탄핵 정국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고 있다.
민주당이 미적대는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민주노총, 환경단체와 함께 민주당의 3대 압력 단체인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다. 민변은 간첩죄 확대 형법 개정을 반대하는데, 이유는 국정원 권한 남용으로 간첩 혐의자 양산과 민간 사찰 등 인권 침해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 인권에는 늘상 침묵하거나 심지어 남북 관계 개선에 역행한다며 북한인권법 제정도 반대하더니 간첩 혐의자 인권은 유독 챙기는 모습이다. 민변 변호사들은 간첩 사건에서 국민참여재판 신청, 재판부 기피 신청, 재판장 고발 등 온갖 방법으로 시간을 끌어 구속기간 만료로 풀려나게 하는 ‘재판 지연 투쟁’의 코치로서 악명이 높다.
또 하나는 중국이다. 지난해 경찰에 적발된 해외 기술 유출 사례 25건 중 중국으로 흘러간 사례가 18건이며, 이 중에는 국가 핵심 기술 유출도 10건이나 된다. 정보사 사건, 해군작전사 사건은 물론 송파 중식당 비밀경찰서 사건, 4조3000억원 규모 삼성 반도체 기술 유출 사건 등도 모두 중국과 관련된 일이다. 민주당은 ‘셰셰 정당’이라고 할 만큼 친중 성향인 것은 국내외가 다 아는 일이다. 이재명 대표가 싱하이밍 전 주한중국대사 앞에서 보인 모습은 친중을 넘어 굴욕적 사대주의라는 비난이 많다. 중국의 압박과 민주당이 이를 의식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
지난해 말 간첩법 개정안 처리 지연 과정에서 유명한 어록이 있다. 분위기를 주도한 서영교 민주당 의원의 “언제 적 간첩인데 지금 간첩을 얘기하냐”는 말이다. 지금 간첩은 여전히 암약하고 있는 북한 간첩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스파이조직 중국 간첩이다. 중국 국가안전부에는 20만 명 이상의 요원이 있으며 해외 블랙 요원만도 수만 명이다. 이들이 해외에서 무수한 정보와 기술을 빼내 와 중국 굴기의 ‘카피캣 전사’ 노릇을 하고 있다. 서 의원은 “군사기밀이 다 국가기밀이냐”고도 했다. 군사기밀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게 기업의 기술 비밀이다. 경제 안보 시대 기업 기밀은 국가 전략 자산이며, 이런 기밀이 해외로 빠져나갔을 때 기업 경쟁력이 침해되고 결국 일자리 상실로 민생마저 피해를 보는 것이다. 이제 간첩법은 국가 안보는 물론 우리 국민의 소중한 일자리를 지키는 민생 법안으로 다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