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클래식感]‘인류가 직면한 새 문제’ 창작오페라 세 편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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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가 가져올 인류의 위기를 그린 ‘지구온난화 오페라 1.5도C’. 한음오페라단 제공

지구온난화가 가져올 인류의 위기를 그린 ‘지구온난화 오페라 1.5도C’. 한음오페라단 제공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오페라’라는 단어는 지나간 시대의 걸작들을 상기시킨다. 신화 세계를 배경으로 한 바로크 오페라와 길거리 갑남을녀의 치정살인극이 펼쳐지는 19세기 말 베리스모 오페라는 배경뿐 아니라 문학적, 음악적, 스펙터클적 측면에서 때로는 같은 장르로 보기 힘들 정도의 다양성을 갖는다. 오늘날 한국의 창작 오페라는 어떤 면에서 장르적 ‘오페라성’을 주장할 수 있을까. 이 작품들은 장기적으로 대중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을까.

최근 관람한 세 편의 창작 오페라를 통해 이 질문들에 대한 다양한 답변과 가능성, 한계를 확인했다. 디아뜨소사이어티가 제작한 ‘윙키’(2월 15일 서울 강북문화예술회관), 한음오페라단의 ‘지구온난화 오페라 1.5℃’(2월 22일 충남 당진문예의전당), 아트팜엘케이의 ‘칼레아 부탈소로’(3월 1일 서울 한전아트센터)다. 세 작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포함되어 지원을 받는 오페라다.

세 작품 모두 오늘의 인류가 처한 새로운 환경에 착안한 점이 흥미로웠다. ‘윙키’는 인공지능(AI)과 로봇이 가져올 근미래와 윤리성의 문제를 조명했다. ‘지구온난화 오페라 1.5℃’와 ‘칼레아 부탈로소’는 나란히 지구온난화가 가져올 환경 파괴와 인류의 파멸을 경고했다. 전자는 인류의 종말에, 후자는 구원의 가능성에 방점을 찍었다.

‘윙키’의 주인공은 아이 돌보미 로봇이다. 한 가정의 아기가 의문사한 시점에서 극은 시작된다. 아이를 24시간 지켜볼 로봇은 왜 죽음을 방치했을까. 수많은 질문이 제기된 뒤 관객이 가장 알고 싶은 범죄의 진실은 여전히 의문 또는 열린 결말로 남겨두어 궁금증이 남았다. 작곡가 공혜린의 곡은 현대적 창작 어법과 뮤지컬을 중심으로 한 대중적 어법이 혼합됐다.

극에 기복을 부여한 주인공은 윙키와 같은 복장을 했지만 윙키의 소프라노 음색과 대조되는 바리톤이 노래한 ‘알고리즘’이었다. 인간을 대체한 AI에게 자아가 있다면 그 자아는 알고리즘과 반목하는 것일까 또는 협력하는 것일까. 인식론적 배경이 깔린 설정이었고 윙키와 바리톤의 음역 대조는 이를 위해 효과적인 장치였다.

‘지구온난화 오페라 1.5℃’는 주연과 조연의 경계가 없는 영화적 오페라를 표방했다. ‘기후 파국을 막기 위해 증기기관 등 과거 온난화의 변곡점을 만들어낸 주인공들을 차례로 찾아가지만 실패한다’는 플롯은 초반부터 결말을 예상할 만했다. 마지막 장면 ‘멸망’에서는 비극적인 가사와 대조되는 온화한 멜로디가 서로 겉돌아 보였다. 이 부분에 사용된 음악을 끝 장면으로 보내되 인간이 후회와 반성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가사로 바꾸고, 그 뒤에 비로소 비극적인 합창과 관현악 총주로 작품을 마무리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이용주 작곡가의 곡은 라벨의 발레 음악 ‘다프니스와 클로에’나 20세기 미니멀리즘 작곡가 필립 글래스의 도큐멘터리 음악 ‘아니마 문디’를 연상시키는 복합적인 음악어법으로, 관객을 흡인할 만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오늘날의 객석에 호소할 수 있는 선택으로 읽혔다.‘칼레아 부탈소로’는 판타지 문학을 연상시키는 독자적인 설정 또는 ‘세계관’을 설정했다. 레치타티보나 대사 없이 아리아와 중창, 합창의 연결만으로 진행됐는데 프로그램북 등을 통한 별도 설명 없이 무대만 보아서는 관객이 서사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스페인어를 쓰는 텔로스 부족의 모습은 얼마간 남미 밀림 지역에서 온 부족을 연상케 한다. 이에 상응하듯 짝수 리듬의 8박을 3 대 2 대 3으로 분할한 라틴적 리듬이 주를 이뤘다. 거의 모든 음악이 4마디 배수 단위의 악구-악절로 나눠졌다. 무대는 해수면 상승을 배경으로 한 여러 영화들처럼 비계가 불쑥불쑥 솟은 해양도시를 묘사했다. 무대 배경은 두 시간 동안 전환되지 않았다.

오늘날 오페라 관객의 많은 수가 뮤지컬 관람 경험을 바탕으로 극장에 온다. 한국 창작 오페라들이 지닌 오페라로서의 장르적 특성은 무엇일까. ‘클래식 음악’의 인적 인프라를 활용하는 것일까. 대중적 어법을 넘어서는 ‘진지한’ 음악의 문법일까. 대중성을 넘어서는 주제의식일까. 세 작품 모두 일정한 차별성은 엿보였다. 어떤 점이 새 작품들을 오페라의 전통과 잇는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한 진행형으로 보였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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