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은 얼핏 간단한 문제로 보인다. 만일 초등학생에게 “도핑은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라고 묻는다면 쉽게 답할 것이다. 그러나 도핑과 반도핑(anti-doping) 간의 싸움은 간단하지 않다. 한 명의 도둑을 열 명의 경찰이 막기 힘들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음험한 논리도 숨어 있기 때문이다.
도핑은 운동선수가 경기력 향상을 위해 금지된 약물을 사용하는 행위다. 공식 용어로 1899년 등장했다. 당시 경주말에게 약물을 주입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훨씬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인들은 곰팡이 핀 무화과를 먹었고 로마인들은 피로를 느끼지 않도록 검투사에게 약물을 먹였다. 중국과 이집트, 인도에서는 동물의 성기를 먹으며 강인함을 유지했다고 문헌에 나온다.
필자가 추정하기에 인류 최초로 도핑을 한 사람은 플라톤이다. 그는 요즘 말로 ‘어깨깡패’였는데 훈련받았던 체육수업(일종의 레슬링)에서 탁월했고 대회에도 출전했다. 당대 최고의 철학자인 그는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데 열심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어떤 풀잎을 먹으면 피로에서 빨리 회복되는지’도 궁리했을 것이다. 요즘은 체육대학 입시생 사이에서도 약물이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다는 논문이 나올 정도로 일상화되었다.스포츠 세계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도핑을 조직적으로 막기 위해 1999년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창설됐다. WADA는 각 정부나 비정부기관으로부터 분담금은 받지만 독립적인 기구다. 매년 10월 1일 금지 약물 리스트를 공표하며 해당 목록은 이듬해 1월 1일부터 발효된다.
만일 과학적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다면 많은 선수들이 도핑을 선택할 것이다. 단순히 개인의 승부욕이니 명예욕을 넘어 오늘날의 스포츠는 거대한 산업이 되었고 팬의 관심은 극렬하며, 스폰서의 압력 또한 거부하기 힘들다. 때로는 국가의 의도가 조직적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특히 브레인도핑, 기계도핑 외에도 외과적 수술을 동원한 도핑도 있다. 방법은 다양하고 규제는 무력하다.
여러 이유로 현재의 WADA는 ‘도핑 제국주의’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기술을 가진 나라가 도핑을 활용하고, 이를 통해 스포츠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리며 민족적, 국가적 탁월성을 과시한다는 의심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현 제도에서 규정된 리스트 밖의 방법을 통해 합법적이고 공인된 방법으로 교묘하게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고 본다. 일종의 합법적 범죄다. 도핑은 ‘금지된 장난’이라 치부하기에는 ‘작란(作亂)’으로 치명적이지만, 걸리지 않는다면 누구나 선택할 만큼 매혹적이다. 그리고 ‘위장된 정의’라는 회의적 시각이 존재하는, 세상의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주제다.유상건 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 교수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