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정상회담 막후 주역 아베 아키에 여사
아베-트럼프, 스포츠와 골프로 친해져
트럼프, 아베에게 솔직한 질문 많이 해… 나도 멜라니아와 매우 가까워
60년 전에 비해 한일 관계 크게 개선
아베-문재인 역사 문제 생각 달라… 정상 간 국익 위해 싸워야 할 것도 있어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도 일본에 대해 언급할 때 아베 전 총리를 자주 언급한다. 아베 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미 대통령에 당선된 2016년 11월 해외 정상 중 처음 뉴욕 트럼프타워를 직접 찾아 회담했다. 이후 두 정상 임기가 겹친 3년 8개월간 14차례 대면 회담과 5번의 골프 라운딩, 36회 전화 회담을 가지며 미일 정상 간 돈독한 관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동아일보는 6일 오후 아베 여사와 만났다. 인터뷰는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일본 사회공헌 지원재단 사무실에서 1시간가량 진행했다. 아베 여사가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뒤 공식 인터뷰에 나선 건 일본 언론을 포함해 본보가 처음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찬에서 자신이 직접 외교 문제를 언급하진 않았다면서도 “(동석한) 다른 사람이 조금 정치적 얘기를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이날 만찬 이후 미일 정상회담의 물꼬가 트였다는 건 부인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찬 막전 막후부터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하는 감회, 세상을 떠난 아베 전 총리에 대한 생각까지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최근 웬만한 정치인 이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정치인 아내, 총리 부인으로 여러 곳을 다니며 쌓은 인맥이 있으니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일본과 세계 평화를 위해 뭔가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이다. 내가 직접 일을 한다기보다 재단 일이나 불러주시는 곳에 가는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후 일본인으로 처음 지난해 말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남편을 애도하는 따뜻한 메시지를 받았다. 감사를 표하면서 대통령 취임 축하 메시지를 멜라니아 여사에게 전하고 싶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초대했나.
“멜라니아 여사를 만나고 싶다는 뜻을, 지인을 통해 전했더니 트럼프 대통령이 마러라고 만찬에 초대해 줬다. 대통령 당선 후 취임식까지 여러 가지 결정할 것도 많고 굉장히 바쁜 와중에 면담이나 차 한잔, 점심 식사도 아니고 2시간 이상 저녁 식사 시간을 내준 것을 보면 나보다는 남편에 대한 마음이 컸을 거라고 생각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어떤 얘기를 나눴나.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전 총리 사이가 좋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서로 스포츠에 관심이 있었다. 골프도 함께 즐겼고,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취임 전 아베 전 총리가 트럼프타워를 직접 찾았다. 모두가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깜짝 놀라던 때다. 대부분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국 민주당 후보(전 국무장관)가 이길 거라고 생각했던 때다. 서로 마음이 맞았고, 서로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했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꽃을 안기면서(공을 돌린다는 뜻의 일본식 표현) 일본 국익을 해치지 않도록 좋은 모습으로 계속 대화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남편은 잡담을 굉장히 잘하는 사람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좋아할 화제를 많이 찾았다. 관찰력이라고 할까.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식사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남편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굉장히 솔직하게 했다. 미국 대통령이 일본 총리에게 정치적 질문을 하는 건 흔치 않을 텐데, 그런 의미에서 신뢰 관계가 두터웠다고 생각한다.”
―아베 여사 덕에 미일 정상회담이 실현됐다는 평가가 많다.
“전혀 아니다. 만찬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시바 총리를 만나 달라고 말을 꺼내지 않았다. 외무성과 이시바 총리 주변 분들이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멜라니아 여사 카운터파트는 (이시바 총리의 부인인) 이시바 요시코 여사이지만, 지금까지 멜라니아 여사와 가장 친한 일본인은 나였을지도 모른다.”
―일본 정부에 정상회담을 앞두고 조언했나.
“남편이 살아 있었다면 이시바 총리에게 조언했을지 모르지만, 내가 말한 건 전혀 없다. 다만 남편 통역을 맡았던 다카오 씨(다카오 스나오 외무성 일미지위협정실장)가 통역으로 따라갔으니 이시바 총리가 다카오 실장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봤을 것 같다. 다카오 실장의 얘기를 들어달라고 내가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그가 동행했다는 건 안심이 된다.”
한일 관계로 화제를 돌렸다. 아베 전 총리 시절 한일 관계가 최악이던 시절에도 아베 여사가 한국에 관심이 많다는 건 익히 알려졌다. 그는 한국 드라마를 자주 보고 김치 담그기 행사에 참여할 정도로 한류를 즐겼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는 묻기도 전에 “요즘 한국 상황이 걱정”이라며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인 올해 감회가 남다를 텐데….“재작년과 작년에도 한국에 갔다. 한국에서는 반일 감정이, 일본에서는 한국에 대한 차별감이 있다지만 이웃 나라끼리는 어디나 그런 게 있지 않을까. 그래도 60년 전과 비교하면 일한 관계는 압도적으로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나라와 나라 관계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 사람 간의 관계가 좋아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한국 정치 상황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다.
“한국인은 일본인보다 뭔가 확실히 주장하는 것 같다. 흑과 백이 확실한 면이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일본인이 한국 드라마를 보면 속이 후련해지는지도 모른다. 지금 한국 상황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완전히 나라가 양분된 느낌이다. 한국의 정치가 일본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만큼 좋은 형태로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베 전 총리 재임 시절 한일 관계가 좋지 않았다.
“맞다. 한국에 못 갔고, 국제회의장에서 주로 만났다. 대통령 부인들과는 사이좋게 지냈지만 힘들었다.”
―당시에 아베 전 총리와 한국에 대해 서로 얘기한 적이 있나.
“한국에 대해서라기보다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남편의 생각이 달랐던 것 같다. (어떤 점이 달랐나.) 역사 문제가 아닐까 싶다. 남편과 정치 얘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로서는 다들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정상 간에는 국익을 걸고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있었다. (남편은) 일본을 위해 밀고 나가야 하는 게 있었고 한국은 한국 입장에서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부딪치면서 전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런 면에서 솔직히 부인 외교가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일본 젊은 세대에 한류 열풍이 대단하다. 한국에서도 일본 음악 인기가 높다.
“일본 드라마나 아이돌 그룹도 힘냈으면 좋겠다(웃음). 과거 한국에서는 일본 음악이 금지되지 않았나. 그렇게 한국에서도 일본을 받아들이는 건 큰 발전이다. 일본 음식집도 많아지고 일본 술도 즐기고…. 남편 선거구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는 재일 교포가 많고 관부 페리(부관 페리)가 있어서 부산 페스티벌도 매년 한다. 서로 좋은 부분을 보고 공유하면서 더 좋은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한국에 호감을 표현하는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비판은 늘 있는 일이다. 전혀 내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022년 7월 유세 중 총격에 숨진 아베 전 총리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인터뷰 내내 밝은 표정이었지만 이내 눈이 붉어졌다.
―올해가 아베 전 총리 3주기다. 당시를 기억한다면….
“금요일이었다. 집에서 청소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정말로 깜짝 놀랐고 이미 여러 분이 집에 오셨다. 밤샘 장례식, 국장, 야마구치 현민장 등이 진행됐다. 이후 여러 서류 절차가 있었고 많은 분들이 집에 와서 회의도 했다.”
―언제 아베 전 총리가 가장 생각나는지.
“역시 해외에 갔을 때다. 강연할 때도 그렇고….”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때도 생각나지 않았나.
“물론이다.”
―요즘 하시는 일을 소개한다면….
“사회공헌을 하는 분들과 함께 재단 일을 한다. 범죄 피해를 당한 유족을 지원하고, 범죄 감소를 위한 사업들도 한다. 감옥이나 소년원에 가고, 약물에 의존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 그중에는 가정환경에 문제가 있거나 부모의 애정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학대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범죄라는 게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문제 해결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요즘 일과는 어떤가.
“어제는 이사를 했다. 혼자 사니 좀 더 아담한 곳으로 옮겼다(아베 전 총리와 아베 여사 사이에는 자식이 없다). 오후에는 재단 일을 했고, 저녁에는 친구들과 식사했다. 느슨하다. 아직 주소지인 야마구치현을 왔다 갔다 하고, 지방에서 종종 강연한다. 잘하지도 않고 파워포인트 자료를 쓸 줄 아는 것도 아니지만 수다 떠는 느낌으로 하면서 많은 성원을 받는다.”
―앞으로 미일 관계, 한일 관계에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그런 건 정치인들에게 물어봐 달라(웃음). 친한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기본이다. 남편이 쌓아줬다고 해야 할지, 그 자리에 동석했다고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분들을 만나면서 인간관계를 계속해 나가고 싶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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