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솔뫼 ‘극동의 여자 친구들’ 중
지난해 머문 태국 북부에서 다른 작가들과 짝을 지어 서로의 움직임을 따라하는 워크숍에 참여했다. 나의 파트너는 영국에서 온 조너선이었고 그는 나보다 서른 살쯤 많았으며 30cm쯤 더 컸다. 우리는 설명에 따라 서로의 눈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시야의 가장자리에서 어른거리는 상대의 움직임을 따랐다. 움직임 자체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던 파란 눈동자를 무언가로 착각했던 것 같은데 그것은 나였을까, 모르는 사람이나 시간이었을까.
개와 걷는 동안 종종 바람과 등을 맞대고 있고 그 바람은 나뭇잎과, 나뭇잎은 새와, 새는 구름과… 그렇게 함께 움직이며 서로의 어깨뼈를 혼동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개는 자주 곤경에 처한다. 나무에 줄이 걸려서, 볼일이 급해서, 땅이 젖어서… 그 앞에서 나는 대체로 발이 가볍고, 뭘 해야 할지 알고, 명료하고 단순하게 몸을 다루는 사람처럼, 그렇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좋다. 나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잠시 해결한 듯이.
김리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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