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없는 사회[정덕현의 그 영화 이 대사]〈45〉

2 weeks ago 5

“미안하다. 그때 모른 척해서.”

―이정범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도 제가 창피하죠? 그래서 모른 척했죠? 괜찮아요. 반 애들도 그렇고 선생님도 그런데요 뭐……. 거지라고 놀리는 뚱땡이 새끼보다 아저씨가 더 나빠요. 그래도 안 미워요. 아저씨까지 미워하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 한 개도 없어. 그 생각 하면 여기가 막 아파요. 그러니까 안 미워할래.” 때론 영화 속 대사가 안타까운 현실을 맞이해 새삼스러운 아픔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영화 ‘아저씨’에서 김새론이 했던 대사가 그렇다. 전직 특수요원이지만 부인을 잃고 실의에 빠진 채 살아가는 태식(원빈). 그는 유일한 친구인 옆집 소녀 소미(김새론)가 도둑으로 오해받는 걸 알고도 모른 척 해버린다. 그는 그렇게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간다.

‘아저씨’는 그렇게 세상을 등졌던 태식이 범죄조직에 납치된 소미를 찾아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액션 누아르다. 화려한 액션이 주목을 끄는 영화지만, 영화가 방영됐던 2010년의 비극적인 현실이 겹쳐져 더더욱 마음을 건드린 작품이기도 하다. 2008년 벌어졌던 조두순 사건을 비롯해 2010년에 연달아 터진 김길태, 김수철 사건과 같은 아동 대상 범죄들 앞에서 무력감을 느꼈던 어른들의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현재, 김새론의 갑작스러운 비보는 영화 속 소미의 대사를 새삼스럽게 만든다. 용서 없는 사회의 비정함과 지나친 여론재판 속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을 때 우리들은 왜 모른 척했을까. “미안하다. 그때 모른 척해서.” 태식이 소미를 구한 후 하는 그 말 또한 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소미는 태식을 꼭 안아주고, 태식은 그렇게 구원받는다. 누군가를 구하는 일은 또한 나를 구하는 일임을 왜 모를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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