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원수]尹 구속 취소, 왜 검찰의 수사 실패인가

4 days ago 6

정원수 부국장

정원수 부국장
12·3 비상계엄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뒤 보석으로 풀려난 조지호 경찰청장은 “계엄 당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의원 체포를 닦달했다”라는 취지로 경찰과 검찰, 헌법재판소에서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고위 공직자가 임명권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진술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암 투병 중인 조 청장은 “역사 앞에 진실을 말해야 고통을 덜 받는다”라는 변호인의 조언을 귀담아들었다고 한다.

‘대통령 부하들’ 말 바꾸면 공소 유지 어려워

역사라는 말은 적어도 수사나 재판에 있어서는 반복적, 중복적이라는 말과 동의어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은 수사기관으로부터 한 차례 조사받았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받고 또 받을 수밖에 없다. 재판도 계속 검증받게 된다. 법적 논란이 정리됐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외부 환경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역사의 법정은 어쩌면 시효 없이 무한 반복된다. 이런 점에서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한 점의 의혹이라도 있으면 언젠가는 문제가 불거진다.

헌정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기소 과정을 한번 되돌아보자. 검찰은 올해 1월 26일 오전 10시 대통령의 기소 여부를 놓고 전국 고검장·지검장 회의를 했다. 법원이 대통령의 기소 데드라인으로 정한 시간을 이미 53분 넘긴 시점이었다. 사흘 전인 23일 공수처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10일간 구속기간을 연장해 달라’며 법원에 신청했지만, 그 다음 날 불허됐다. 이 결정에 불복했지만 25일에도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당시 공수처의 구속기간 계산법이 잘못됐다면서 조기 송치를 요구했고, 윤 대통령 측의 조사 거부로 추가 수사에 대한 실익이 없었던 검찰이 사흘간 기소를 유보할 필요가 있었을까.

어처구니없는 건 회의에서 “검찰이 공수처의 하청 기관이냐?” 등의 얘기가 오갔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을 앞에 두고 검찰이 피의자의 방어 논리를 뚫는 데 힘을 모으기보다는 조직 이기주의에 휩싸였던 것 아닌가. 사실 윤 대통령 측이 문제 삼고 있는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도 검찰이 촉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검찰은 계엄 사흘 만에 수사기관 중 가장 먼저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했다.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었는데, 근거는 검찰 시행령의 직권남용죄 관련 범죄로 내란죄까지 수사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공수처가 같은 내용의 공수처법을 들이대며 검찰에 사건 이첩을 요청한 빌미를 제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형사사법의 주재자인 검찰이 처음부터 수사가 아닌 기소에 집중했다면 공수처가 대통령 수사에 끼어들지 못했을 것이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가 현직 대통령 신분을 유지한 채 수감 52일 만에 풀려났다. 내란죄로 수사를 받은 ‘대통령의 부하들’이 부담감에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조서를 법정에서 부인하면 앞으로 공소 유지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수사 자체가 없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헌재가 파면 결정을 하면 어떻게든 신병 확보를 다시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헌재가 탄핵을 기각하면 어떻게 될까. 직무에 복귀한 대통령이 인사로 검찰 수사본부를 해체하고, 법무부 장관은 수사지휘권으로 대통령의 공소 취소를 요구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특수본 해체, 공소 취소 가능해진 치명적 실수

법에 정해진 기간을 넘겨 업무 처리를 하는 것을 법조인은 가장 수치스럽게 여긴다. 검찰은 다른 수사기관이나 법원 탓 그만하고, 수사 무효로 이어질 수 있는 수사 실패를 바로잡을 방법부터 하루빨리 내놔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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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수 부국장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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