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범죄는 실질적 피해가 발생했을 때 성립한다. 윤 대통령의 주장처럼 국회가 완전히 마비되거나 정치인이 체포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2시간 반 만에 계엄이 해제됐으니 결과적으로 별문제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일부 있을 듯하다.
내란죄는 위험범… “목적 달성과 무관”
하지만 이는 내란죄가 ‘위험범’, 즉 법익이 침해될 위험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성립되는 범죄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대법원은 내란죄의 성격에 대해 “국헌 문란 목적으로 다수인이 결합해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폭행·협박 행위를 하면 기수(범죄의 완성)가 되고, 그 목적의 달성 여부는 무관하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국회 등 국가기관이 실제로 전복되지 않았더라도 헌정질서가 무너질 위험이 발생했다면 내란죄가 성립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더욱이 법원은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요소로서 폭행·협박을 “최광의(가장 넓은 의미)”로 해석했다. “일체의 유형력 행사나 외포심을 생기게 하는 해악의 고지”가 있으면 폭행·협박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폭행은 사람뿐 아니라 물건에 대한 물리력 행사도 포함된다(신동운 ‘형법각론’). 또 대법원은 ‘전두환·노태우 내란 사건’ 판결에서 1980년 비상계엄 전국 확대에 관해 “그 자체만으로도 국민에게 기본권이 제약될 수 있다는 위협을 주는 측면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내란죄의 협박이 있었다고 했다. 그만큼 인정되는 범위가 넓다는 얘기다.
이번 계엄은 어땠나. 국회 경내에는 군용 헬기와 무장 병력이 투입됐고, 선관위에도 군이 들이닥쳤다. 크고 작은 충돌이 벌어지면서 군은 유리창을 깨고 국회 본관에 진입했다. 윤 대통령은 ‘경비와 질서 유지’를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현장에 있던 이들에게는 심각한 위협이었을 것이다. 이에 더해 포고령에는 영장 없는 체포·구금·압수수색, 언론과 출판 통제 등 기본권을 제약하는 내용이 여럿 있다. 물리력이 행사됐고, 다수의 국민이 두려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고 본다.
법원, 폭행·협박을 폭동으로 넓게 인정 계엄이 합헌·합법적으로 이뤄졌다면 행정과 사법을 관장하기 위해 계엄군이 일부 투입되는 건 용인될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국회에 군을 보낼 근거는 없다. 포고령으로 국회·정당을 포함한 정치활동을 전면 금지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 더욱이 지난해 12월 3일이 계엄법상 선포 요건인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돼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상태였나. 공직자 탄핵과 예산 삭감이 도를 넘었다고 해도 정치로 풀어야 할 영역이다.법적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계엄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6조 원 이상이라고 한국은행은 추산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측이 평가하는 민주주의 지수에서 한국은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추락했다. 계엄 이후 증폭된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는 데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윤 대통령이 아무리 부인해도 이 모든 게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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