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3일 의대가 있는 전국 대학 40곳 총장들과 화상 간담회를 열고 이렇게 주문했다. 예정대로 3월 초 개강하고 의대생들이 계속 수업을 거부하면 학사경고, 유급 처분을 원칙대로 하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한 대학 총장은 필자에게 “의정합의가 안 되면 올해도 수업 거부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학칙을 엄격하게 적용한다고 돌아올 거면 지난해 돌아오지 않았겠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엄정하게’ 등 14차례 반복 효과 없어
하지만 의대생 대부분이 돌아오지 않자 이 부총리는 지난해 7월 의료 인력 수급 차질이 우려된다는 이유를 들며 태도를 바꿨다. 학칙을 유연하게 적용해 불출석으로 F학점을 받더라도 유급시키지 말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것이다. 다만 ‘휴학 승인 불가’ 방침은 고수했다.
그래도 학생들이 휴학 승인을 요구하며 복귀하지 않자 지난해 10월에는 2025학년도 복귀를 약속하면 휴학을 승인해 주겠다고 다시 입장을 변경했다. 이때도 복귀를 약속하지 않고 계속 수업을 거부할 경우 “학칙을 엄격히 적용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의대생과 의료계가 반발하자 3주 만에 ‘조건 없는 휴학’을 허용하겠다며 말을 바꿨다. 그러면서도 “(의료계와) 신뢰가 형성됐다. 의대생도 내년에는 돌아올 것”이라며 낙관론을 폈다.
이 부총리가 의료공백 사태 이후 의대생 학사관리를 ‘엄정하게’, ‘엄격하게’, ‘원칙대로’, ‘철저하게’ 해 달라고 말한 건 공개 석상에서만 14번이다. 하지만 별 효과는 없었고 의료계의 반발만 커졌다.
한 대학 총장은 “학사관리를 엄정하게 하라면서 유급은 금지했고, 휴학은 불허한다고 했다가 허용하는 등 정부 방침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갈팡질팡한 게 지난 1년”이라고 요약했다. 여러 차례 원칙을 강조했다가 번복하며 교육계와 의료계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냉탕 온탕 오가며 신뢰 잃어
이 부총리가 이번에 ‘엄정한 학사관리’를 다시 들고나온 건 올해 신입생이 수업 거부 대열에 동참하는 걸 막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의료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올해 의대 신입생을 1500여 명 늘렸는데 이들까지 수업 거부에 동참할 경우 의대 증원의 정당성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이고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장기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내년 1학기에 3개년도 신입생 1만 명 이상이 함께 수업을 듣는 사태도 벌어질 수 있다.
하지만 지난달 기준으로 재학생 95%가 휴학한 상황이다 보니 신입생들은 수업에 들어갔다가 괜히 선배들에게 찍히는 건 아닌지 고심하는 분위기다. 과거 의정갈등 때도 수업 거부에 동참하지 않았다가 배신자 취급을 당하며 고생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집단행동의 계기가 되는 걸 막기 위해 ‘선배와의 대화’ 순서를 생략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입학 후 선배들이 접촉하는 것까지 막을 순 없다. 대학 중에는 지난해 신입생 휴학을 허용하며 1학년 1학기 휴학 금지 규정을 없앤 곳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이 부총리가 다시 압박에 나선다고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원칙대로 처리하겠다면 초반부터 그렇게 했어야 했다. 지금은 의대생이 버티면 정부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걸 교육계도, 의료계도 다 안다. 이 부총리는 최근 인터뷰에서 “물에 빠져 죽을 각오로 2월 중 의료계와 반드시 협상을 끝낼 것”이라고 했다. 의미 없는 압박보다 그 말을 지키는 것이 의대생 복귀를 위한 가장 빠른 길일 것이다.
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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