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장원재]서울외신기자클럽이 보도 완장을 만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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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논설위원

장원재 논설위원
주한 특파원 모임인 서울외신기자클럽은 지난달 회원들에게 하늘색 보도 완장을 배포했다. 완장에는 언론을 뜻하는 ‘PRESS’를 검은색으로 새겼고 그 아래 ‘서울외신기자클럽’이라고 영문과 한글로 표기했다. 클럽 측은 회원사 공지에서 “최근 일부 시위 참가자가 과격해지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현장 취재 시 위협을 느끼는 회원이 늘고 있다”며 완장을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들어보니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 등 아시아 매체 기자도 집회를 취재할 때 누군가 다가와 말을 시키고 말투가 어색하면 “중국인이냐”, “중국인이 왜 찍느냐”며 위협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한국서 나타나는 혐오 폭력의 징후

최근 탄핵 찬반으로 사회가 분열되며 상대에 대한 혐오가 폭력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부정선거의 배후로 사실상 중국을 지목한 후 온라인에는 윤 대통령이 언급한 주권침탈세력 및 반국가세력이 ‘화교’와 ‘중국인’이란 음모론이 급속히 퍼졌다. 이를 접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올 1월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하며 경찰을 ‘중국 공안’이라고 불렀고, 지난달 26일 이화여대 집회 때는 탄핵 찬성 시위대에 “중국인이냐”고 묻고 멱살을 잡았다.

심리학에선 혐오를 혐오 발언, 회피, 차별, 신체적 공격, 집단학살 등 다섯 단계로 분류한다. 낮은 단계에선 상대를 피해 다니지만, 높은 단계가 되면 사냥하듯 상대를 찾아내 공격한다. 최근 집회 현장을 지나는 외국인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며 ‘중국인 색출’에 나서고, 헌법재판소나 언론사에 중국 국적자가 있다며 특정인을 지목해 마녀사냥을 하는 건 혐오 수위가 올라가는 명백한 징후다.

더 불안한 건 이런 행동을 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반국가세력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왜곡된 사명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노스이스턴대 교수진은 연구를 통해 혐오 범죄자 유형을 네 가지로 분류했는데 그중 가장 위험하고 심각한 유형이 바로 ‘사명감을 가진 혐오자(mission hater)’였다.


‘트럼프 효과’와 ‘살라흐 효과’

편견이 혐오가 되는 과정에는 상대적 박탈감과 과장된 공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허위 정보 확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다 제도권에서 혐오를 인정하거나 정당화하면 더 이상 자신들이 온라인에 고립된 소수가 아니란 자신감을 갖고 집단적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번에도 윤 대통령이 불씨를 지피자 여당 의원들이 ‘언론이 화교에 넘어갔다’ 등의 글을 공유하며 혐오를 부채질했다. “계엄군이 중국 간첩 99명을 체포했다”는 허위 정보를 확산시킨 인터넷 언론, “중국이 한국 붕괴를 위한 전쟁에 돌입했다”고 발언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 씨 등도 혐오를 자극했다.

영국 범죄학자 매슈 윌리엄스는 2021년 자신의 책에서 ‘트럼프 효과’와 ‘살라흐 효과’를 소개한 바 있다. 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슬람에 대한 분열적·차별적 트위터 메시지를 올린 후 혐오 범죄가 증가한 것이다. 이번 ‘트럼프 2기’가 시작된 직후에도 아시아계를 겨냥한 비방 혐오 표현은 66% 증가했다. 후자는 2017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리버풀에 입단한 무함마드 살라흐 선수의 활약으로 무슬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해당 지역에서 혐오 범죄가 줄고 SNS상의 혐오 게시물이 감소한 것이다. 지역 팬들은 “그가 몇 골 더 넣으면 나도 무슬림이 될 것”이란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한국 사회는 혐오가 집단적 폭력으로 넘어가는 ‘티핑 포인트’에 와 있다. 혐오가 선을 넘지 않도록 무엇보다 정치권과 정부, 언론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며 혐오를 부추기지 말아야 한다. 유튜버와 인플루언서, 소셜 플랫폼이 더 이상 허위 정보와 선동, 혐오 표현을 확산시키지 않게 만드는 제도적 보완도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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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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