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장원재]무죄 판결에도 책임 안 지는 한국 검사들

1 month ago 6

장원재 논설위원

장원재 논설위원
일본에 ‘정밀 사법’이란 단어가 있다. 검사가 100% 유죄를 확신할 때 기소해 반드시 유죄 판결을 받아낸다는 뜻이다. 실제로 일본 형사재판의 유죄 비율은 99.9%에 달한다. ‘법원 판단을 받아보겠다’며 일단 기소하는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그런 만큼 형사재판 무죄는 일본 검찰에 큰 불명예로 여겨진다. “무죄 판결이 나오면 검사직을 떠나겠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검사로 12년 동안 일했던 이치가와 히로시 변호사는 자신의 책에서 “무죄 판결은 검찰에 일대 사건”이라며 “3년 차에 처음 경험한 무죄 판결은 지옥 같았다”고 돌이켰다. 내부 항소 심의에선 무죄 책임을 두고 추궁이 이어지는데 “담당 검사에 대한 린치 수준”이라고 했다.

항소는 새 증거나 쟁점이 있는 경우에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일본 파견 경험이 있는 전직 검사는 “일본에선 검찰의 항소나 상고가 매우 드물고 유무죄가 아닌 양형의 경중을 이유로 상소하는 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미국은 무죄 시 항소 불가

미국의 경우 하급심에서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되면 검찰이 상소할 수 없다. “동일한 범행으로 생명이나 신체에 대한 위협을 재차 받지 않는다”는 수정헌법 5조에 따른 것이다. ‘세기의 재판’으로 불린 O J 심프슨 사건과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아동 성추행 혐의 사건도 1심 무죄 판결로 끝났다. 대법원에 따르면 한국과 같은 대륙법 체계인 독일에서도 중죄 사건의 경우 사실 심리를 다투는 항소는 허용되지 않는다.

반면 한국에선 무죄 판결이 나오면 검찰이 대부분 항소나 상고를 한다. ‘다시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것이다. 기소율이 일본보다 높은데 상소까지 일반화돼 있으니 한 번 형사 기소되면 수년 동안 시달리다가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또 한국에선 무죄가 나와도 담당 검사에게 불이익이 거의 없다. 검찰 내부에 설치된 ‘사건평정위원회’가 매년 무죄 사건에서 검사의 과오 여부를 판단하지만 최근 5년간 무죄 사건 3만6117건 중 검사의 과오가 인정된 건 3730건(10.3%)에 불과했다. 나머지 90%는 ‘판사와의 견해차로 인한 무죄’로 마무리됐다. 과오가 인정되면 벌점을 받지만 인사에 큰 영향을 주진 못한다. 과오가 인정돼 징계를 받은 검사도 최근 5년 동안 ‘0명’이었다.

오히려 검찰 차원에서 힘을 쏟았던 사건은 무죄 판결이 나도 승진하는 경우가 많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1심은 혐의 47개가 모두 인정되지 않았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1, 2심에선 혐의 19개가 모두 인정되지 않았지만 이들 사건을 담당한 검사들은 대거 승진했다. 두 사건을 지휘한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무죄 신경 쓰지 말고 기소하라”며 독려했다고 하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뜬금없이 현행법 탓한 이복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자신이 수사를 맡았던 이 회장 재판에서 2심 무죄가 나오자 “국민께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 회장과 삼성그룹에는 사과 한마디 안 했고 뜬금없이 현행법을 탓했다. 검찰도 “법원과 견해가 다르다”며 상고했다.

무죄에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건 다른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만 해도 과거사 사건 재심에서 줄줄이 무죄가 선고됐지만 검찰은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다. 친부 살해 혐의로 25년 동안 옥살이를 하다가 올 초 재심 무죄 판결로 출소한 김신혜 씨에겐 사과 대신 항소로 대응했다. 일본에서 지난해 말 47년 동안 옥살이를 했던 80대 남성이 재심 무죄 판결을 받자 지검장이 자택을 찾아 “대단히 죄송하다. 항소하지 않겠다”며 90도로 고개를 숙인 것과 대조적이다.

형사사건 기소는 한 사람의 생애와 기업의 존망을 좌우하는 사안이다. 그런 만큼 신중해야 하고, 결과에 대해선 검사가 제대로 책임을 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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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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