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정은]부정선거 의혹이 키운 혐중… 외교 부담만 커진다

3 weeks ago 6

이정은 부국장

이정은 부국장
다이빙 주한 중국대사는 이달 초 조태열 외교부 장관을 첫 공식 예방한 자리에서 조 장관의 부친인 조지훈 시인의 시 ‘새아침에’를 읊었다. ‘출렁이는 파도 위에 이글이글 태양이 솟듯이/그렇게 열리라 또 그렇게 솟으라’는 마지막 구절을 언급했다고 한다.

이태백 같은 옛 문장가들의 한시를 정상회담 등에서 자주 인용해온 중국이 시를 꺼내든 것이 새롭지는 않다. 그래도 다이 대사가 조지훈 시인의 시 일부를 낭송한 것은 부친에 대해 존경심이 각별한 조 장관을 위한 맞춤형 준비였을 것이다. 한중관계를 새롭게 개선해 태양처럼 ‘이글이글’하게 만들자는 취지의 설명에 접견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고 참석자들은 전한다.

껄끄러운 대중 외교 현안 쌓였는데…

이런 외교적 노력이 무색하게도 한국은 거센 계엄의 후폭풍 속 중국의 선거 개입 논란으로 시끄럽다. 윤석열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헌법재판소 변론 과정에서 중국의 선거 개입을 기정사실화한 질의를 계속했다. 현직 대통령이 의혹 제기에 앞장서니 지지자들의 동요가 잦아들 리 없다. ‘캡틴 아메리카’ 복장을 한 유튜버가 주한 중국대사관에 “테러를 하겠다”며 난입하려 한 사건은 어쩌면 예고된 난동이었다.

해외에서 불거진 선거 개입 의혹들을 보면 중국을 의심해 볼 만하긴 하다. 지난해 대만선거에서는 ‘스톰1376’이라고 불리는 친중 그룹이 인공지능(AI)을 이용해 후보들에 대한 가짜 동영상과 밈을 생성, 유포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대선에서는 러시아와 중국, 이란이 모두 선거 개입을 시도했다는 게 중앙정보국(CIA) 같은 정보 당국의 판단이다. 캐나다는 2019년과 2021년 연방선거에 중국이 연달아 개입했다는 의혹이 확산되면서 이를 조사할 특별보고관이 임명됐다.

다만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목적으로 여론 조작을 했다는 것과 선거 시스템을 해킹해서 결과에 직접 손을 댔다는 건 다른 이야기다. 해외 주요국에서 문제가 된 중국의 시도들은 ‘스패머플라지(spam+camouflage)’라고 불리는 허위정보의 소셜미디어(SNS) 유포나 특정 후보에 대한 간접적 자금 지원 등으로, 개표 시스템 서버에 침투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올해 1월 나온 캐나다 특별보고관의 최종 보고서를 보자. 122쪽짜리 보고서는 “중국 등 해외 국가들의 선거 개입 시도가 실제 있었다”고 했지만 “제한적으로 이뤄졌고, 선거 결과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국내에서도 2년 2개월의 심리 끝에 나온 대법원 판결은 물론 현재까지 윤 대통령 측이 내놓은 자료 중 계엄 선포까지 해야 할 부정선거 증거를 확인한 것이 없다.

한중관계 관리는 올해 우리의 주요 외교과제 중 하나로 꼽힌다. 중국은 여전히 우리의 최대 수출국이고 첨단기술 분야에서 치고 올라오는 나라다. 10월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한이 예상된다. 한중 정상회담은 물론 시 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한국을 무대로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한중 양국이 지속적으로 협의해야 할 의제들이 줄줄이 생겨날 것이란 의미다.

국내 정치적 이유로 嫌中 조장 안돼

그 과정에서 중국과 때로 얼굴을 붉히고 정면으로 맞서야 할 이슈들은 많다. 역사와 문화 논쟁부터 사드(THAAD)와 한한령, 탈북자 북송 문제 등 껄끄러운 현안들도 언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지 모른다. 정확한 팩트를 바탕으로 냉철하게 대응해도 모자랄 판이다. 확실한 근거도 없는 부정선거 의혹으로 반중 감정에 휘둘리며 중국에 공격 빌미를 줄 여유가 어디 있나. 국내 정치적 이유로 부풀어 오른 혐중(嫌中) 여론이 이글이글 타오르게 놔두는 것은 정상 공백 속 가뜩이나 힘든 대중외교의 걸림돌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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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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