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신광영]내란 특검, 설거지 수사라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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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논설위원

신광영 논설위원
12·3 비상계엄 이후 내란죄로 기소된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해 11명이지만 이들의 공소장은 사실상 하나다. 공소장별로 피고인만 다를 뿐 목차와 내용이 거의 같다. 윤 대통령이 계엄 전후 어떤 지시를 했고, 군경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상세히 재구성하는 데 분량의 대부분이 할애돼 있다. 문제는 딱 거기까지라는 점이다. 윤 대통령이 왜 계엄을 했는지, 계엄을 어떻게 준비했고, 성공하면 어디까지 가려고 했는지는 명확히 수사된 게 없다.

드러난 것 구체화하는 데 그친 검경 수사

내란죄를 입증하려면 헌법 기관을 무력화시킬 목적의 폭동이 있었다는 걸 잘 보여줘야 하는 건 맞다.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주요 사령관 등 ‘머리’를 잡아넣은 마당에 무슨 수사가 더 필요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검찰의 공소장은 온 국민이 지켜본 현장들, 수면 위로 이미 드러나 수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을 구체화하는 데 그쳤다. 그 아래 감춰진 것들을 충분히 파헤치진 못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나온 증언들은 그간의 수사로 메우지 못한 빈칸이 아직 많다는 걸 보여줬다.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은 윤 대통령이 계엄 직전 삼청동 안가로 불러 계엄 선포 이유로 개인 가정사를 언급했다고 밝혔다. 조태용 국가정보원장이 계엄 전날 김건희 여사로부터 문자를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윤 대통령이 계엄을 감행한 진짜 동기가 따로 있을 수 있다는 정황이다. “야당의 폭거를 막으려 했다”는 건 윤 대통령이 명분으로 내건 일방적 주장일 뿐이다. 형사사건에서 범행 목적은 객관적 증거로 판단할 뿐 피고인 주장을 그대로 인정하진 않는다.

정치인과 언론인 500명을 수거해 처리한다거나 계엄 명분을 위해 북한 도발을 유도한다는 내용이 담긴 노상원 수첩도 미궁 속에 있다. 누구 지시로 작성됐는지, 어디까지 실행하려 했는지 수사가 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계엄 관련 지시를 담은 쪽지를 둘러싸고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조 원장의 진술이 서로 엇갈린다. 검경이 남은 의혹들을 수사하고는 있지만 윤 대통령 탄핵 이후 대선이 시작되고, 새 정부 출범으로 지도부가 바뀌면 수사는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공권력이 범행 주체이자 수사 주체이기도 한 특수성이 있다. 기관 수장들이 계엄과 얽혀 있어 엄정한 수사가 어려울 것이란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드러난 건 수사하지만 배후는 애써 들추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검찰이 김성훈 경호처 차장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을 3차례나 반려한 것도 그런 의심을 받고 있다. 윤 대통령 체포를 앞장서 막았던 김 차장은 현 정권 인사들의 비화폰 통화 기록을 인멸하려 한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그가 구속돼 비화폰 서버가 경찰 손에 들어가면 대통령실과 검찰 수뇌부의 부적절한 통화가 드러날까 봐 수사를 방해한다는 비판이 그래서 나온다. 경찰 역시 계엄 직후 조지호 경찰청장, 이상민 전 장관 등과 통화를 해 연루 의혹을 받는 사람이 최근 서울경찰청장에 임명됐다. 그는 청장이 공석 상태인 경찰에서 사실상 1인자다.

특검 없이 계엄의 빈칸들 어떻게 채우나

내란 사건은 결국 특검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이미 재판이 시작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건 검경 수사로 사건 전모가 거의 밝혀졌다는 전제에서만 타당한 얘기다. 역사에 길이 남을 이 사건의 빈칸을 그대로 둔 채 수사의 종지부를 찍을 수는 없다. 그동안 수사기관의 적법성을 문제 삼아 온 윤 대통령은 이제 법정에서 수사 내용의 빈틈을 파고들 것이다. 특검이 출범해도 검경 수사의 설거지만 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지만 설거지를 확실히 해놓지 않으면 다음 식탁을 차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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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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