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윤종]아픈 가족에게 ‘이젠 보내줘’라고 듣는다면

1 week ago 2

김윤종 사회부장

김윤종 사회부장
“어머니를 끝까지 모실 겁니다.”

지난달 20일 경기 고양시에 사는 김중석(가명) 씨가 말했다. 80대 부모와 함께 사는 그는 10년간 아픈 어머니 간병 때문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더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준비했다. 이 소식을 들은 아파트 경비원이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면 어떠냐”고 제안하자 김 씨가 단호하게 거부한 것이다. 불과 12일 뒤 김 씨는 80대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를 살해했다. 이들은 경찰에 “어머니(아내)가 먼저 죽여 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끝까지 모시겠다’는 김 씨의 발언에 대해 주변 지인들은 “너무 힘들어서 스스로에게 한 다짐일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매달 1.6건씩 발생하는 간병 범죄

‘노노(老老) 부양’이 늘면서 이 같은 슬픈 사연이 일상처럼 다가온다. 경찰에 따르면 국내에서 한 달에 평균 1.6건씩 간병 살인이 발생한다. 안타깝게도 가해자 중 상당수는 평소 가족 사랑이 컸다고 한다. 그렇기에 아픈 부모와 남편 혹은 아내를 장기간 보살폈고, 오랜 간병으로 인한 어려움도 그만큼 더 많이 누적되면서 극단 범죄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간병 범죄를 저지른 이들의 경찰 진술 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발언이 자주 나온다.

“평생을 함께한 아내(남편)인데 지금 늙고 병든 모습을 보면 너무 안쓰러워 힘들어도 참았다. 하지만 수년이 지나니 한계다. 좋은 데로 보내고 나도 따라가겠다”며 동반 자살을 암시한다. “너무 아파하니 나도 아프다. 함께 가기로 했다”는 유서를 남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피해자들 역시 “여보(혹은 얘야) 나 이젠 그냥 보내줘”, “이렇게 살면 뭐해. 이젠 하늘로 갈게”라며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표현을 수시로 한다.

치매 노모를 10년 가까이 돌본 한 자녀는 이렇게 고백했다. “하루에 수십 번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엔 ‘우리 엄마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란 안타까움이 컸어요. 초기엔 요양보호사를 썼지만 비용 부담으로 점차 혼자 돌보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보살펴온 엄마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너 누구야’라며 공격합니다. 자꾸 나쁜 생각을 하게 돼요.” 건강보험연구원 조사 결과 가족 간병인의 33%는 우울증 증세를 보였으며, 42%는 자살까지 생각했다.

범행 이르는 평균 기간 6년 전에 지원해야 간병 범죄가 짧은 기간 내에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법원 판결문과 심리 부검 등을 보면 간병가족이 범행에 이르기까지 걸린 간병 기간은 평균 6년이다.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어려운 돌봄생활을 버틴다는 것이다. 범죄에 빠지지 않도록 이 기간 내에 각종 지원을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이유다. 고령화를 미리 겪은 선진국에선 가족 간병인의 휴식권을 보장하는 여러 정책을 시행 중이다.

영국과 미국 등은 임시돌봄(Respite care)을 운영 중이다. 가족 간병인이 휴식을 원하면, 환자를 자택이 아닌 다른 장소로 옮겨 대신 돌봐주는 제도다. 일본 역시 단기입소간병(Short stay) 제도가 있다. 환자가 시설 등에 일정 기간 숙박하면서 간병을 받고 가족들은 휴식을 취한다. 독일은 간병 중인 가족이 휴식을 원하면 대체돌봄비용을 지급한다. 스웨덴 등에는 환자들이 자신의 집에서 돌봄과 의료, 식사 등을 통합 지원받을 수 있는 커뮤니티케어도 구축돼 있다. 가족 간병인 부담은 더는 한편, 환자 역시 안정적으로 자택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함께 돌보는 시스템이다.

한국은 지난해 65세 이상 비율이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가족 간병인 규모도 100만 명에 육박한다. 병든 가족이 오랜 간병으로 지친 나에게 “이젠 그만 보내줘”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답은 개인의 숙제가 아니다. 그 누구든 간병 범죄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급함으로 우리 사회가 하루빨리 간병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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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종 사회부장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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