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의 흉기에 숨진 김하늘 양(8)의 아버지 김민규 씨는 절규하며 일명 ‘하늘이법’ 제정을 호소했다. 가해 교사 명모 씨는 지난해 12월 우울증으로 6개월간 휴직 신청을 한 후 3주 만에 복직했다. 짧은 시간 내 복직하는데도 진단서에는 ‘정상 근무 가능’으로 적혀 있었다. 범행 4일 전 동료 교사 목을 졸랐다. 사건 당일 장학사가 학교를 찾아 분리 조치를 권고했고, 명 씨는 무단 외출해 흉기를 사 왔다. 매 순간 어른들이 조금만 신경을 써서 조치를 취했다면 8세 아이가 사망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즉각 하늘이법 제정에 나섰다. 교원 정신질환 검사 의무화, 정신건강 문제 교사 직권 휴직 등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어린이 이름을 딴 법안들 계속 늘어나
재발 방지를 위해 검토해 볼 만한 조치들이다. 그럼에도 ‘언제까지 사고가 난 후에야 피해 어린이의 이름을 딴 법안을 만들어야 하나’라는 자괴감, 나아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을 지울 수 없었다. 민식이, 한음이, 정인이 등 여러 이름이 떠올랐다. 2019년 당시 9세 민식이는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이후 스쿨존 교통안전을 강화하는 일명 ‘민식이법’이 제정됐다. 다섯 살이던 해인이는 2016년 어린이집 앞에서 사고를 당했지만, 응급조치를 제대로 받지 못해 사망했다. 어린이 시설 안전사고 시 응급조치를 의무화하는 ‘해인이법’이 2020년 시행됐다.동승 보호자 의무 탑승 등을 담은 ‘세림이법’은 아이가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량에 치여 숨진 뒤 생겼다. 통학버스 내 아동 하차 여부를 확인하는 ‘한음이법’은 2016년 당시 세 살 이한음 군이 통학차량 안에 방치돼 사망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학대로 아동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개정된 법안도 적지 않다. 2020년 정인이는 양부의 상습 학대로 숨졌다. 아동학대 의심신고 시 즉각 분리 등을 담은 ‘정인이법’이 생긴 배경이다. 어린이에 대한 잘못된 투약에서 비롯된 종현이법까지, 아이들 이름을 담은 법은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법들은 아이들 안전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일각에선 겉으로 드러난 문제를 중심으로 법안이 서둘러 만들어지다 보니, 근원적인 해결책이 되기엔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식이법이 생겼지만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는 2022년 529명, 2023년 523명 등 큰 변화가 없다. 정인이법에도 불구하고 아동학대 건수는 2023년 4만8522건으로, 전년 대비 5.2% 증가했다.
서둘러 법 만들기보단 예방시스템 구축해야
하늘이법의 경우 정신질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명 씨가 단순히 우울증만으로 아이를 무참히 살해했다고 보기 어렵다. 자칫 우울증 등을 앓는 교사를 낙인찍어 이를 더 숨기게 하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우울증 진료 초교 교직원이 2018년 4033명에서 2023년 9468명으로 급증한 만큼, 교실 현장부터 세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대면 인계’ 의무화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돌봄교실에 있던 하늘이가 학교 앞에 도착한 학원 차를 타려고 혼자 이동하다 변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는 적절한 인력 충원을 전제로 한다. 한 교사는 “돌봄교실 교사 1명이 학생 31명을 맡고 있다”라며 “아이들 학원 시간이 각각 다르다. 보호자가 올 때마다 대면 인계를 하긴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했다. 학부모들은 “유연근무 등 자녀 등하교를 챙길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하소연한다. 아이가 숨질 때마다 빠르게 희생자 이름으로 법안을 만들고 ‘대책을 마련했다’고 안도하는 과정에서 본질적인 문제를 놓친 것은 아닐까. 충분한 숙의 속에 참사를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안착돼야만 어린이 이름의 법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김윤종 사회부장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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