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승련]표와 박수만 좇는 ‘후진 정치’

3 weeks ago 6

김승련 논설위원

김승련 논설위원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지 묻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1961년 케네디라는 만 43세 미국 대통령이 했다는 연설은 참 맹랑하다. 당시 워싱턴 정치라고 유권자에게 하나하나 다 챙겨드리겠다는 달콤한 약속을 안 했을 리 없다. 그런데 갓 당선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정반대를 주문했다. 요즘 한국 정치인들이라면 꿈도 못 꿀 메시지다.

민주당 전략: “거부권 반복 나쁘지 않다”

여의도에서 좋은 정치란 선거에서 이기는 정치다. 좋게 말해 민심에 충실한 것이고, 기분 나쁜 표현이지만 손에 뭘 쥐여줘야 이긴다고 다들 믿는다. 오락가락하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온 국민에게 1인당 현금 25만 원씩 나눠주겠다고 방향을 잡았다. 그러더니 봉급 생활자 세금도 깎아주겠다고 나선 것도 다 이기기 위해서다. 국민의힘이라고 다르지 않다. 한동훈 대표 시절 금투세 적용 시기를 늦춰 주식 투자자를 겨냥한 감세를 민주당보다 먼저 꺼내든 이력이 있다. 모두 수천만, 수백만 수혜자를 노리고 나라 곳간을 비우는 것이다. 반대로 ‘약속보다 더 걷고, 덜 돌려드릴 수밖에 없어졌다’며 머리를 숙여야 하는 국민연금 개혁은 양당이 몇 년째 뒤로 미루고 있다.

민주당은 2년 전 ‘재집권 전략 보고서’라는 단행본을 펴내면서 이 점을 명확히 했다. 책에는 “기득권 세력에 피해를 보는 이들(사회적 약자)을 위해 … 다수가 효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법을 발굴해 확 밀고 가자. (윤석열 정권이) 민생법안을 거부하는 재의 요구를 자꾸 발동하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문장이 등장한다. 양곡법안이 딱 부합하는 사례다. 민주당은 2023년 이후 이 법안을 2번 단독 처리했고, 2번 거부권이 행사됐다. 이 법대로라면 정부는 남아도는 쌀값을 유지시키기 위해 해마다 3조 원을 써야 해 재정 낭비 논란이 컸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농민을 위한 법을 만들고, 대통령 혹은 권한대행은 농심을 망각한 채 거부권을 썼다는 이미지가 생겼을까. 만약 생겼다면, 책 제목 ‘재집권 전략’은 일부 먹힌 게 된다.

정치인들은 응집력 강한 소수의 극렬 지지층 앞에 맥을 못 춘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서울서부지법 난입, 헌법재판관 집 앞 시위를 두고 “우리의 길이 아니다”라고 똑 부러지게 말 못 한다. 또 부정선거론에 대해서도 애매한 태도를 유지했는데, 이거야말로 윤석열 대통령이 배격하자던 반지성주의에 해당한다. 그동안 광우병, 사드 전자파, 천안함 폭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효과 등을 놓고 대체로 보수정당이 상대 정당의 비과학성과 반지성을 개탄하는 구도였는데, 지금은 뒤집혀 버렸다. 이른바 문빠를 두고 “양념”이라고 감싼 것이나, 개딸 그룹의 ‘수박 처단’ 흐름을 방치했던 것과 다를 게 없다.

與는 전광훈 선 긋고, 野는 왼쪽 설득해야

혹시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정책과 메시지로 후보들 사이에 옥석이 가려질 것이다. 이번에도 국민 세금으로 표 받고, 듣기 좋은 말로 박수받는, 쉽지만 후진 정치가 선전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렇게 끝나선 곤란하지 않을까. 자신의 지지층에게 좀 불편하더라도 꼭 필요한 말을 하는 후보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국민의힘 후보라면 전광훈 목사 그룹의 황당한 주장과 선을 긋는 이가 나왔으면 좋겠다. 또 “나는 중도 보수”라고 좌표를 잡은 이재명 대표가 그 위치에서 저 왼쪽에 있을 지지자들을 설득하는 모습도 보고 싶다. 왜 글로벌 전쟁을 벌이는 국가대표 기업의 생존이 중요한지, 북한에 한없이 너그럽기만 한 안보정책이 왜 한미일 3각 협력을 해치는지. 여와 야에서 불편하더라도, 꼭 가야 하는 그 길로 우리를 인도하는 지도자가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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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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