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에게 사과 메시지 보냈다가 '식겁'…'카톡 대참사' 무슨 일? [이슈+]

3 days ago 1

사진=챗 GPT에서 생성

사진=챗 GPT에서 생성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미안해. 나도 진짜 같이 준비하는 게 좋고 너랑 이런 얘기 나누는 게 설레는데, 내가 표현을 잘 못해서 너만 한다는 느낌 들게 한 것 같다.
우리 여행 준비하면서부터 이미 추억이 되는 거니까 같이 재밌게 만들어 가자.
혹시 내가 너 대신 실제 답장 문구를 카톡 톤에 맞게 좀 더 다듬어 줄까? 원한다면 달달한 남친 톤도 가능해. 예시가 필요하면 말해줘."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카톡 사과 대참사'라는 해당 게시물이 화제가 됐다.

여행 계획을 놓고 의견을 조율하던 한 커플의 카카오톡 대화에서 남자친구로 추정되는 인물은 는 다정한 메시지를 보냈다.

해당 문장은 아무 문제가 없는 다정하고 공들인 사과로 보이지만 문제는 남자친구가 실수로 복사해 전송한 챗 GPT가 자동 생성한 그다음 문장이었다.

출처=온라인커뮤니티

출처=온라인커뮤니티

5일 해당 카톡은 캡처 이미지와 함께 SNS·온라인 커뮤니티 전반에서 5만7000회 이상 폭발적으로 공유됐고 반응은 엇갈렸다.

누리꾼들은 "본인 머리로 사과 한 줄 못 쓰는 인간이 무슨 연애를 하겠다고 하냐", "나 같으면 바로 헤어진다"는 비판이 이어진 한편 "원래 제일 하기 싫은 일부터 자동화하는 게 인간 본성이다", "나도 비슷한 경험 있다. 'ChatGPT에서 작성됨'까지 같이 복사돼 식겁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어떻게 하면 기분 안 상하게 말할까 고민한 흔적이 보여 오히려 좋은데 이게 왜 욕먹을 일인지 모르겠다"는 옹호 의견도 등장했다.

◇부부싸움 중 GPT 호출 사례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AI에 의존한 연애 메시지 사례는 일회성 해프닝이 아니다. 온라인 공간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연애·부부 관계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GPT를 활용했다는 경험담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는 배우자·연인과의 대화, 일상 등에서 GPT로 상황을 해결했다는 경험담들이 꾸준히 올라온다.

한 글쓴이 A씨는 "와이프하고 말다툼해서 분위기 안 좋았는데 GPT 때문에 풀렸다"며 "와이프가 장문의 서운함을 보냈는데, 예전 같으면 '미안하다, 앞으로 잘하겠다'라고 대충 보냈을 거다. 그럼 더 화났을 텐데 GPT에 '와이프 카톡에 적절한 답변 만들어 달라'고 해서 그걸 자연스럽게 수정해 보냈더니 바로 풀렸다. 와이프도 '미안하다'고 먼저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글쓴이 B씨는 "와이프랑 엄청 싸우는 데 문자로 막 비난하길래 GPT에 '무슨 뜻인지, 어떻게 답장해야 하는지 물어서 비슷하게 보냈더니 바로 풀렸다"며 "앞으로 무지성으로 이렇게 해야겠다"고 했다.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과정, 그에 맞춰 말을 고르고 어휘를 다듬는 수고를 GPT에 외주 맡기겠다는 뜻이다.

일상적 대화의 흐름을 살리기 위해 GPT를 쓴다는 이들도 많다. 한 누리꾼은 "사람과 연락할 때 말주변이 없어서 대화가 뚝뚝 끊기는 스타일인데 GPT로 답장 추천받아 보내면 대화가 미친 듯이 잘 이어진다"면서도 "만약 상대도 GPT 쓰면 이건 인간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AI끼리 대화하는 셈 아닌가 싶더라"고 말했다.

◇직장인은 '상사 메시지 답장', 교사는 '학부모 문자 답장'에 활용

출처=충남교총 업무경감 플랫폼

출처=충남교총 업무경감 플랫폼

직장과 학교서도 이러한 의존 현상이 점점 많아지는 분위기다. 교사들이 학부모에게 보낼 문자를 AI로 작성해주는 사이트도 등장했다. 일명 '따뜻한 학부모 문장 답장 생성기' 같은 서비스들이다.

이들 서비스에 대한 사용자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매일같이 수십 건의 연락을 처리해야 하는 교사 입장에서는 "업무 부담이 획기적으로 줄었다"는 후기가 나온다.

기자가 직접 사용해 보니 '아이 교복을 세탁소에서 아직 찾지 못해 지각할 것 같습니다'라는 학부모 문자를 그대로 입력하면 "안녕하세요, 학부모님. 아이 교복 때문에 많이 걱정되시겠어요. 괜찮습니다. 등교하는 대로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혹시 교복을 찾게 되시면 학교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아이가 학교에 도착하면 저에게도 알려주세요. 감사합니다"라는 완벽한 답장이 5초 내에 써졌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서울 소재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는 이모 씨(31)는 "상사에게 감사 메시지나 사과문을 보낼 때 일일이 정성 들여쓰기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며 "예를 들어 '상사 OOO님께 보낼 감사 메시지인데 오늘 커피 사주신 것, 피드백 주신 것 포함해서 작성해줘’라고 GPT에 지시하면 문장을 척척 만들어 준다. 그걸 복사해 붙여넣다 보니 이제는 긴 감사 인사나 사과문까지 전부 그렇게 쓴다"고 고백했다.

대학생 최 모 씨(22)는 "1~2학년 때는 교수님께 보내는 카톡을 예의 있게 쓰려고 고민했는데, 지금은 GPT에 몇 가지 명령만 하면 끝"이라며 "내가 입력해온 말투를 GPT가 학습해서 자연스럽게 써준다. 솔직히 상대도 모를 것 같다. 문장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져도 너무 귀찮아서 계속 그렇게 보낸다"고 했다.

◇전문가들 "시간 절약 효과도 분명…양면성 존재"

출처=챗GPT에서 생성

출처=챗GPT에서 생성

이 같은 흐름을 두고 학계와 전문가들은 '문해력 저하' 우려와 '시간 절약 효과'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고 있다.

AI와 빅데이터의 추천에 지나치게 의존해 스스로 판단하는 걸 멈추고, AI가 제시하는 결정을 수용하는 인간을 가리켜 '호모 브레인리스(Homo Brainless)', '호모 브레인오프(Homo Brainoff)'라고 부르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이은주 가톨릭관동대 교양대학 교수는 "말과 글은 생각 정리 능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AI 의존이 문해력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건 당연하다"면서도 "사람들이 AI에 문장을 맡기는 이유는 문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해 없게 쓸 적절한 문구를 찾는 데 시간을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글을 써볼 기회도 줄어들고, 애초에 자기 말로 글을 쓰는 연습이 안 된 상태에서 AI가 들어왔다"며 "자신감도 없고 답장은 빨리해야 하니 이런 일이 생긴다. 적절한 사용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오창은 중앙대 교양대학 교수는 "챗 GPT가 진짜 효용을 발휘하는 건 본인이 문장을 쓰고 난 뒤 수정·다듬기를 요청할 때"라며 "처음부터 메시지를 대신 써주는 건 사실상 의미 있는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다. 먼저 본인이 쓰고, AI는 검토와 제안을 맡고, 그 제안을 스스로 검증하며 다듬을 때 소통의 질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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