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제주서 핀 애순이의 사계절…엄마에서 딸로 이어진 꿈과 사랑
넷플릭스 12개국 1위·글로벌 6위…"문학적 대사와 보편적인 공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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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오명언 기자 = 노오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제주도의 봄.
"'섬 놈'에게는 절대, 네버, 시집가지 않겠다"며 종알대는 단발머리 문학소녀 오애순(아이유 분)과 속상한 표정의 섬 촌놈 양관식(박보검)이 나란히 발을 맞춘다.
둘은 차마 손도 잡지 못한다. 애순이 짐짓 모른 척 자기 손을 관식의 호주머니에 찔러 넣자 관식은 애꿎은 자기 옷자락만 쥐느라 손끝이 하얗게 질린다.
1960년대 풋풋하면서도 솔직하고, 투박하면서도 따뜻한 그 시절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속에서 재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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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는 시계를 한참 돌려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전인 1960년대 제주도 앞바다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먹고살기 힘들던 그 시절, 괄괄한 잠녀(해녀)들 사이에서 큰 애순이는 꿈 많은 소녀다. 시 쓰는 것을 좋아하고, 언젠가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니겠다는 포부를 안고 있다.
하지만 불운과 가난, 성별이 애순이의 발목을 붙든다.
어릴 적 아버지를 여의었고, 엄마 광례(염혜선)도 새 가정을 꾸렸다가 2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계집애가 공부를 잘하면 장손의 길을 막는다는 작은 아버지, 급장(반장) 투표에서 이겨도 부잣집 애한테 양보하라고 호통치는 담임 선생님, 이부동생들이 클 때까지 살림을 맡아달라는 엄마의 전남편 등이 애순의 꿈을 차례로 꺾는다.
예전처럼 자신을 지켜줄 엄마도, 몸을 뉠 집도 없는 애순이는 막막할 따름이다.
그래도 애순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생선 집 아들 관식 덕분이다.
애순이 말마따나 '금도끼', '은도끼'는 못 되어도 믿을만한 '쇠도끼'인 관식은 애순이를 위해 부산으로 야반도주하기도 하고, 비바람이 치는 바다를 헤엄쳐서라도 애순에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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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드라마가 둘의 러브 스토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 작품에선 남녀 간의 로맨스보다 모녀간의 사랑과 삶에 대한 애증이 더 진하게 묻어나온다.
무엇보다도 엄마에게서 딸에게로, 또 손녀에게로 이어지는 내리사랑이 눈에 띈다.
극 중 엄마들은 딸을 아끼기에, 자기 삶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광례가 악착같이 일하면서도 한사코 딸 애순이에게 잠녀를 시키지 않으려는 모습, 애순이 딸 금명이가 아궁이 앞에서만 살다 죽는 팔자가 아니길 비는 모습이 겹친다.
광례가 애순이가 식모처럼 지내는 시댁에 깽판을 치고 조기 한 두름을 내던진 뒤 딸의 손을 끌고 나온 것처럼, 애순이는 금명이를 잠녀로 만들려는 시댁의 제사상을 뒤엎고 딸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선다.
애순이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아이유가 1990년대 배경에서 성인이 된 금명이로 나오는 것도 엄마의 삶이 딸에게 이어진다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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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어려웠던 시절을 그리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아들 관식이가 못마땅할 때마다 "차라리 개를 키울걸"이라고 한탄하는 애순이 시어머니의 대사, 관식이와 애순이가 사글셋방에 살면서 매일 뜨거운 신혼을 보내느라 전등을 끄려고 헛손질하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낸다.
광례가 죽기 전 어린 딸 애순이의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여주면서 "두고 봐라, 요 꽃물 빠질 즈음 되면 산 사람은 또 잊고 살아져. 손톱이 자라듯이 매일이 밀려드는데 안 잊을 재간이 있나"라는 대사, 애순이가 "점복(전복) 팔아 버는 백환, 내가 주고 어망 하루를 사고 싶네"라는 글에선 문학적 필치도 엿보인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대사나 표현을 보면 상당한 문학성을 띠고 있다"며 "토속적이고 해학적이면서 생각할 거리가 있는 대사가 눈에 띈다"고 말했다.
제주도 풍광과 방언, 시대상을 반영한 학교와 시장, 부두의 풍경도 극의 감칠맛을 더한다. 애순이의 봄을 상징하듯 유채꽃이 만발하고, 신록이 푸르른 제주도의 모습이 여러 차례 담겼다.
토속적이고 가부장적인 시대상을 반영한 디테일도 곳곳에 녹아있다. 애순이가 돌하르방 코를 버릇없이 후려치자 시어머니가 기겁하고 코를 어루만진 뒤 기도하고, 여자들은 작은 상에서 생선 대가리와 탄 밥을 먹고, 애순이가 댓돌에 신을 벗자 못마땅해하며 이를 내려놓는 시할머니의 모습에서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흔한 멜로처럼 흐르지 않고, 주변 인물의 서사까지 풍부하게 얽힌 실타래 같은 이야기"라며 "두 남녀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관계가 매력적인 데다가 제주도라는 지리적 배경, 시대적 배경이 더해져서 빛을 발하는 것 같다"고 평했다.
또 시간순으로만 끌어가지 않고, 문소리·박해준이 연기하는 중년의 애순이와 관식의 모습이 사이사이에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늘어지지 않게 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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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를 겪지 않았어도, 제주에 살지 않았더라도 보는 재미가 반감되지는 않는다.
'폭싹 속았수다'는 너무나 보편적이면서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람과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정 평론가는 "다들 편하게 볼 수 있는 유쾌한 작품을 찾는데 역발상처럼 이렇게 깊이 있는 작품이 잘 통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부모 자식이라는 아주 보편적인 공감대를 갖고 있어 해외에서도 반향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온라인 콘텐츠 서비스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폭싹 속았수다'는 넷플릭스 TV쇼 가운데 글로벌 6위(10일 기준)를 차지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홍콩 등 12개국에선 1위를 차지했다.
이 시리즈는 애순이의 인생을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로 나누어 긴 호흡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현재 공개된 1∼4화는 봄에 해당한다. 앞으로 매주 금요일마다 4회씩, 총 16회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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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va@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3월11일 08시10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