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고향이 전북 장수라는 시골이었는데 어렸을 때 아이들이 놀 게 없으니 늘 함께 공을 찼어요. 당시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었죠. 공 찰 땐 우리도 차범근이 됐죠. 공 하나만 있으면 운동장에서나 논두렁에서 즐겁게 뛰어다녔어요. 공 차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죠. 중고교는 물론 대학 시절에도 축구 했고, 지금도 공을 차고 있습니다.”
이 변호사는 고교 3학년 대학입시를 앞두고 급성 간염에 걸려 2개월간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시험 준비를 제대로 못 했고, 결국 재수해서 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그때 건강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대학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운동하기 위해 유도부에 들었다. 매일 체계적이고 규칙적으로 운동했다”고 했다. 유도하면서 체력이 좋아졌다. 물론 친구들과 공도 찼다. 군대 제대한 뒤엔 팀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1996년 제대하고 복학했더니 대학 동아리 축구대회가 있더라고요. (당시 재학 중인) 성균관대 법대엔 축구 동아리가 없었죠. 제가 ‘당대 제일’이란 팀을 만들어 대회에 출전했어요. 12명을 간신히 모아서 나갔는데 우승했죠. 그때부터 교내 축구대회는 우리가 거의 다 휩쓸었어요. 1999년 사법시험 2차 시험을 한 달 남겨두고도 후배들하고 출전해 우승했죠.”변호사가 된 뒤 서울변호사회 축구단인 ‘서로(Seoul Lawyers) 축구단’에 가입하는 등 다양한 클럽에서 활동했다. 월계축구회는 2012년 만났다.
“제가 축구를 좋아하다 보니 당시 로펌에서 축구와 관련된 업무를 많이 맡았어요. 그때 변석화 험멜코리아 회장이자 당시 대학축구연맹 회장을 만났습니다. 우리 로펌 고객이셨거든요. 우연한 기회에 식사하다 제가 축구를 좋아한다고 하니 ‘그럼 월계축구회에 한번 나와 봐라’ 해서 나간 게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어요.”
변 회장이 1974년 창단한 월계축구회는 가입 조건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수습 기간도 있다. 이 변호사는 “회원이 딱 40명이기 때문에 결원이 생길 때 충원하는데 축구 실력을 포함해 다양하게 평가한 뒤 가입시킨다. 회원이 되면 회원들끼리 가족처럼 지낸다. 일요일 축구는 매번 참석해야 하며, 모든 경조사 참석도 기본이다”라고 했다. 이렇게 축구를 즐기다 보니 ‘축구 좀 아는 변호사’로 통해 프로축구 K리그1(1부 리그) 전북 현대와 대학축구연맹 고문 변호사도 지냈다.
2015년부터는 배드민턴도 치기 시작했다. 매주 일요일 축구를 잘하려면 체력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배드민턴이다. 집(서울 강북구) 근처 서울미양초교 체육관에 모여 운동하는 솔샘배드민턴클럽에 가입해 매주 평일 2, 3일 1시간 30분 이상 배드민턴을 쳤다. 배드민턴은 운동량이 상당했다. 이 변호사는 “배드민턴 한 게임만 해도 땀을 뻘뻘 흘린다. 온몸을 쓰는 전신 운동이라 체력이 향상됐고, 축구도 더 잘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월계축구회는 선수 출신들도 많아요. 그래서 조금만 관리를 소홀히 하면 함께 공 차기 힘들어요. 실력 및 체력이 안 되면 경기에 아예 출전을 못 할 수도 있어요. 배드민턴 치며 매주 공을 차니 아직 버티고 있어요. 또 체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시간을 내 조깅합니다. 이젠 한 주라도 공을 차지 않으면 몸이 찌뿌둥해 컨디션이 좋지 않아요. 또 그 주에 받은 스트레스가 있을 때 공을 차면 날아가는데 그러지 않으면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어요. 저에겐 축구가 만병통치약입니다.”
이 변호사는 매주 일요일 25분씩 3게임 이상을 소화하고 있다. 대학 시절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월계축구회에선 수비부터 미드필더, 공격까지 다 소화해야 한다. 회원이 많다 보니 경기 때마다 서로 포지션을 바꿔 가며 플레이한다. 그는 “월계축구회는 모든 선수가 멀티플레이어”라고 했다.
“요즘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어릴 때는 그냥 공만 차면 즐거웠다면, 지금은 축구 하며 정말 행복하다는 것을 새삼 느껴요. 쉰 살 넘어서 이렇게 건강하게 공을 찰 수 있는 것 자체가 행복 아닌가요. 계속 몸 관리 잘해 평생 주말 축구 할 겁니다.”
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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